손담비가 지난 8일 세 번째 미니앨범 '더 퀸(the queen)을 발표하고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런데 2주 간의 컴백 성적표를 받아든 손담비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컴백 이후 많은 이슈들이 양산됐지만 하나같이 부정적인 논란들이다.
손담비는 '더 퀸' 앨범을 공개하자마자 음악 포털사이트에서 실시간 음원차트 1위에 올랐고, 주간차트(11일~17일)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외양적으로는 성공한 컴백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완벽한 실패다.
손담비가 컴백한 이후 대중이 보인 관심은 그가 '미쳤어'와 '토요일밤에'를 히트시킨 전력에서 파생된 기대감이다. 그러나 1년 4개월 간 미국에서 안무 및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며 앨범을 준비했다던 손담비는 음악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기존에 보여줬던 그녀만의 스타일도 퇴색해버린 듯한 인상으로 팬들을 실망시켰다.
◇표절 논란 ·가창력 논란…컴백부터 삐걱
손담비는 컴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틀곡 '퀸'의 뮤직비디오가 미국드라마 '앨리스'의 몇 장면을 표절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인터넷에서는 미드 '앨리스'와 뮤직비디오 '퀸'의 비슷한 이미지가 캡쳐돼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뮤비 표절논란으로 컴백부터 불안한 스타트를 끊은 셈이다. 하필 비슷한 이미지의 섹시가수 이효리가 자신의 4집 앨범 일부 곡이 표절임을 인정하며 일찍 활동을 접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표절에 대한 대중은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다. 논란이 일자 소속사 플레디스측은 "논란이 있다는 얘기를 듣기 전까지 문제가 되는 장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확인 후 뮤직비디오 제작사에 강력 항의, 즉시 수정요청했으며 문제의 장면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표절여부를 떠나 오해 소지가 있는 장면이 나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판단으로 삭제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지만 표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아 의혹을 키웠다.
표절의혹은 뮤직비디오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어 이번 타이틀곡 ‘퀸’이 팝가수 케샤의 ‘틱톡(Tik Tok)’의 전주부분의 멜로디와 음악효과가 상당부분 유사하다는 의혹이 네티즌 사이에서 제기됐다.
컴백무대에 선 뒤에는 가창력 논란이 불거졌다. 손담비가 ‘퀸’을 라이브로 부르는 영상에서 멜로디 부분을 제거하고 순수 노래를 부르는 부분만 담은 MR 제거 음원이 공개되면서 손담비의 가창력이 도마에 올랐다. 공개된 MR 제거 음원은 기계음이 '퀸'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노래를 부른 부분마저도 불안한 음정을 노출했다. 댄스에만 치중한 탓인지 숨이 차는 모습도 보였다. MR 제거 음원을 접한 팬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컴백하자마자 연쇄적으로 발생한 일련의 논란은 '퀸', 그리고 손담비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입혔고,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낳게 했다. 기존 '미쳤어' '토요일 밤에'의 인기와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신예 걸그룹 '미쓰에이'에 밀리는 굴욕을 맛보고 있는 것만 해도 손담비의 이번 컴백은 결코 성공했다고 보기 힘들다.
◇아이돌 대세론에서 안이한 컴백?
걸그룹과 아이돌이 대세인 가요계에서 싱글여가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아이비, 서인영, 나르샤 등이 가요계의 틈새를 공략했지만 대중의 시선을 잡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싱글여가수의 무대에 갈증을 느껴왔던 대중들에게 손담비의 컴백은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팬들의 기대감만으로 섣불리 성공을 확신했던 탓일까. 손담비의 컴백은 자신의 이름값만 믿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는 안이함에서 출발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아이돌 간의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치는 등 중무장하고 나온 아이돌을 따라잡기에는 손담비의 이번 음악은 너무 평범했다. 그가 들고 나온 타이틀곡 '퀸'은 기존에 보여주지 않던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변화를 시도한 것은 눈에 띄지만 대중을 사로잡을만한 포인트가 없어 썩 와 닿지 않는 곡이다.
비슷한 가사와 멜로디가 반복되는 후크송에서 탈피, 음악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려 했지만 대중에게는 생소함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여기에 가창력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단기간 쌓아올린 자신의 스타성만 믿고 준비 없이 컴백한 것 아니냐는 혹평도 쏟아졌다.
손담비는 6월 이효리가 앨범 표절시비로 자진해 후속활동을 접은 뒤 컴백했다. 이효리가 퇴장하자마자, 그것도 앨범 발매 전 흔히 있는 쇼케이스마저 빠뜨리면서 컴백을 시도한 것 자체가 대중에게는 서두른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효리가 없는 때를 틈타 컴백함으로써 이효리와의 전면전을 피하고 '섹시퀸' 자리를 수성하겠다는 의지로 팬들에게 풀이될 소지가 있었다.
앨범 타이틀 '퀸'도 자신이 가요계의 '퀸'이라는 자신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대중에 거부감을 주었다. 다른 여가수의 팬들 사이에서는 스스로 '퀸'이라 공언하는 손담비를 얄미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을 수 있다.
예능, 가요계를 넘나들며 남녀노소 고른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이효리와는 달리 비교적 짧은 연예활동으로 팬층마저 얇은 손담비로서는 '퀸' 컨셉으로 컴백한 것은 무리수였다. 팬들의 우호적이지 않은 시선은 유독 엄격한 잣대에서 손담비를 평가했고, 컴백과 함께 불거진 논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에서 사태의 확산을 주도하게 만들었다.
화려한 퍼포먼스로 가요계를 장악하고 있는 아이돌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할 만한 주무기 없이 컴백한 것은 애초 힘겨운 경쟁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퀸'은 일렉트로닉과 록을 접목시킨 새로운 스타일의 팝댄스곡이다. 손담비는 복고풍 후크 패턴의 댄스곡으로 인기를 모았던 '미쳤어' '토요일밤에'에서 나름 탈피를 시도했다.
그러나 기존히트곡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인지 이번에 시도한 변화가 오히려 밋밋하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또 전보다 밝아진 음악 컨셉에 맞춰 안무와 의상을 가볍게 가져갔지만 손담비의 답답한 음색은 곡이 의도하는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했다.
◇'포스트 이효리' 장기적으로 毒
손담비는 섹시 컨셉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서 섹시코드로 인기를 누린 이효리의 뒤를 이을 주자로 평가받았다. 데뷔 초에는 '포스트 이효리'라는 타이틀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 기여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중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이후가 문제였다. 자신만의 색깔로 가수의 커리어를 쌓아가야 할 시점에 '포스트 이효리' 타이틀은 손담비가 독자적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가로놓여진 장애물과 같았다.
'포스트 누구' 혹은 '제2의 누군가'로 불린다는 것은 비교대상을 뛰어넘을 특출한 주무기가 없을 때, 비교대상의 이미지에 파묻히고 만다는 한계점에 부딪히게 된다. 특히 손담비가 이효리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보통의 그것보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무언가’가 필요하지만 연예계 경력이나 연륜, 팬 지지기반이 한참 모자란 손담비에게 이효리와의 대결은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핑클'로 데뷔해 청순한 이미지, 각종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솔직하고 털털한 이미지, 그리고 솔로댄스가수로 서면서 무대를 압도하는 섹시함까지. 차곡차곡 대중에 자신의 다양한 이미지를 어필하며 친밀함을 축적하여 왔던 이효리다. 이효리는 후속앨범활동을 통해 음악이나 스타일의 변화를 꾀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손담비는 예능, 드라마, CF 등 나름 이효리와 비슷한 행보를 보였지만 손담비의 내공은 이효리에 미치지 못했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재치와 순발력도 그러하거니와 무대 위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더딘 느낌이다. 이효리가 '유고걸' '치티치티뱅뱅'으로 음악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려는 시도를 한 반면 손담비는 이번 앨범 역시 여성스러움을 강조한 섹시를 벗어나지 못했다.
손담비가 '포스트 이효리'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섹시코드가 아닌, 섹시코드라 하더라도 이효리와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줬어야 했다. 이번 손담비의 '퀸'은 변화를 갈망했지만 급진적인 변화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기존의 섹시요소와 변화를 시도한 요소가 어정쩡하게 섞여 이도저도 아닌 게 돼버렸다.
여가수로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갖지 못하면 대중의 외면을 받는 것은 시간 문제다. 나이 마흔을 넘겨 활동하는 여자댄스가수는 엄정화가 유일하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가요계에서 엄정화는 자신의 색깔을 무대 위에서 충분히 보여주고, 음악적으로 끊임없이 변화를 고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게하는 상징적인 여가수다.
◇‘섹시’ 고집해야 했나
컴백하자마자 각종 논란에 부딪힌 손담비가 진정 '퀸'의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고정된 이미지를 하나씩 깨뜨려야 할 과제가 남았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강렬한 섹시함으로 어필했던 손담비가 갑자기 차분한 발라드를 부른다고 이미지 변신이 되지는 않는다. 탄탄한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어설픈 흉내 내기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수 비나 백지영의 성공사례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비와 백지영은 장기간 댄스가수 이미지에 고정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비는 최근 '널 붙잡을 노래'라는 댄스를 가미한 발라드를 새롭게 선보이며 가창력도 댄스실력 못지않음을 증명했다. 백지영은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스캔들 이후 여러 차례 댄스로 가요계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대중의 외면을 받다가 애잔한 발라드로 단번에 가요계 정상에 올랐다. 발라드로 다시 인기를 얻었을지언정 '내 귀의 캔디' 등 댄스도 간간이 소화해 댄스가수의 이미지를 포기하지도 않았다. 발라드와 댄스 특정한 장르를 고집하지 않고, 대중의 구미를 파악해 이용하는 영리한 전략이었다.
비나 백지영이 댄스가수라는 자신의 이미지에 천착해 댄스만 고집했더라면 식상하다는 평과 함께 침체기를 맞았을지 모른다. 두 가수의 사례를 놓고 볼 때 눈여겨 볼 것은 변신의 이면에는 기본적으로 실력이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점이다.
손담비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엇비슷한 섹시를 고집하다가는 언젠가는 이미지 고갈사태에 직면할 거라는 사실이다. 무대 위에서 섹시 이미지를 소진할 대로 소진한 손담비로서는 섹시를 버려서라도 기존 이미지를 벗겨내야 한다. 손담비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자신 있는 댄스를 하되 섹시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대안이다. 그 기저에는 이미지 변신을 받쳐줄 실력이 깔려있어야 한다. 이번에 혹평 받았던 가창력을 가다듬는 것은 필수다.
/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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