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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인터뷰] 스타일리스트① 서은영 "워스트·베스트는 종이 한장 차이"

입력 : 2010-08-21 14:54:26 수정 : 2010-08-21 14: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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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나 패션계나 험난하고 외로운건 마찬가지"

 

영화 포스터, 신문 광고 및 TV-CF 그리고 각종 잡지의 화보까지, 손길 가는 곳 마다 그의 작품으로 도배되었던 때가 있었다. 대한민국 제1세대 스타일리스트로 손꼽히는 서은영. ‘피겨여왕’ 김연아와 배우 고현정, 김아중, 김민희, 정우성 등 톱스타의 스타일을 완성시킨 자타 공인 톱 스타일리스트다.

지난해부터 변정수의 뒤를 이어 케이블채널 올리브의 '올리브쇼'의 MC를 맡으며 정갈한 말투와 재치 있는 입담 그리고 철학이 담긴 메시지로 2,30대 여성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방송 출연 등으로 이제는 길거리에서 제법 사인 공세를 받을 만큼 유명해졌지만 한 달에 두세 번은 해외 출장을 갔던 이력만큼 오히려 외국에 나갔을 때 알아보는 한국인들이 더 많을 정도다. 상암동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왠지 도도하고 새침할 것만 같았던 편견을 깨고 담백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패션 철학을 설파했다.

고혹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인 고현정의 패션지 화보와 차분하면서도 도도한 매력이 돋보였던 김민희의 블랙 드레스, 김연아가 갈라쇼를 통해 선보인 블랙 재킷과 스팽글 탑, 그리고 펄 레깅스 등이 최근 그의 손을 거쳐갔다.

“한달이면 22일 정도는 촬영을 했어요. 영화를 보러가도 포스터는 제 작품이었고, TV를 틀면 제가 담당했던 CF가 나오고 잡지를 보면 역시 내 손을 거쳐 간 작품들이 보였어요. 어느 순간 싫어졌어요. 촬영이 싫은 게 아니라 이렇게 매일 반복하며 무작정 달려야 하나 싶었죠. 일종의 매너리즘이었는데 그때의 그런 고민과 생각들이 더 나를 발전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요즘엔 여러 가지 기획을 해요. 일은 더 크고 어려울 수 있긴 한데 조금 더 여유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죠.”

서은영이 처음부터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한 것은 아니었다. 의류브랜드 클럽모나코, 윈의 패션 디자이너를 거쳐 패션 기자로, 스타일리스트로 이름을 알리다 지금은 스타일링 컨설팅 에이전시 ‘아장 드 베티’의 대표까지 맡고 있다.
 
10년 간 한 달에 두세 번은 해외 촬영을 갔다. 워낙 자주 비행기를 탔던 만큼 모 항공사에서 선정한 ‘마일리지 최고 회원’으로 꼽혀 인터뷰를 했던 이색 경험도 있다. 남들은 해외를 오가며 일도 하고 겸사 겸사 관광도 즐기는 여유로운 직업이라 오해하기 쉽지만 그는 “전쟁에 가까운 작업”이라고 말한다.

“별명이 ‘오지 담당’이었어요. 이집트, 스페인 남부 이런 분위기를 개인적으로 좋아했어요. 좋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인도 산악 마을도 찾아가고, 정말 페트병 물을 따라 얼굴을 씻는 때도 있었죠. 스페인에서는 촬영 중 갑자기 폭풍이 닥쳐 의상과 장비들을 담은 이민 가방을 들고 가까운 레스토랑에 들어갔었어요. 급히 전화도 해야 했고. 그런데 쫒겨 났잖아요. 우리가 보트 피플인 줄 알았나 봐요.”

눈물을 쏟을 만큼 힘들었던 작업도 많았지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스타일리스타만의 특권이다. 서은영은 얼마 전에는 김연아 선수가 갈라쇼를 연습하는 링크장을 찾았다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텅빈 객석에 앉아 프로그램의 음악부터 그녀의 연기동작까지 꼼꼼히 확인하고 계산하며 스타일링을 기획하던 중이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으로 이렇게 김연아의 아름다운 연습 장면을 볼 수 있고, 그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수많은 장소를 다니고…. 참 내가 행복한 사람이구나. 그냥 무조건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문득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가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죠. 연습하던 김연아 선수가 ‘왜 우시냐고’ 얼마나 당황해하던지….”

배우 김혜자와 함께 작업했던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반대로 김혜자가 눈물을 흘렸다.

“배우 분들은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니까 감정에 대해 상황을 잘만 설명해주면 옷과 분위기에 맞는 얼굴을 끄집어내요. 서로 잘 맞아 떨어질 때는 배우도 저도 희열을 느껴요. 김혜자 선생님과 촬영하던 때였는데 저보고 감독을 하면 잘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한창 촬영을 하는데 ‘나 울어도 될까?’ 물으시더라고요. 그때 느꼈어요. 역시 배우는 다르구나.”

흔히 연예인의 의상을 전속으로 담당하는 이를 ‘코디네이터’, 독립적으로 개인 브랜드를 갖고 의뢰를 받는 이는 ‘스타일리스트’로 일컫는다. 여기에 스타일리스트는 패션 뿐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까지 아우르는 더 넓은 개념을 갖고 있다. 서은영은 “스타일리스트란 옷만 잘 입히는 것이 아니라 느낌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들 옷만 잘 입히면 다인 줄 알아요. 하지만 옷만 입고 번듯하게 입고 서 있으면 뭐해요. 팔의 각도, 허리 사이의 공간들, 목선 그리고 손가락의 느낌까지 모두 중요해요. 옷을 입은 후 당당해 보일지 부드럽게 보일지 관능적으로 보일지가 또 중요하고요. 패션의 완성은 에티튜드에요. 그게 바로 흔히들 말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옷 하나 만으로 해결된다면 베스트드레서, 워스트드레서가 나올 수 없겠죠.”

모델과 스타일리스트, 포토 그래퍼 이렇게 셋이 하나의 호흡으로 촬영에 임한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예술의 혼을 담듯 임한다. 꼼꼼하고 명확한 성격 탓에 가끔은 까탈스럽다는 핀잔도 듣는다.

“옷에 대한 어떤 태도를 가지냐, 어떤 마음을 가지냐에 따라 눈빛이 달라지기 때문에 똑같은 옷이어도 어떻게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각양각색이에요. 내면이 없으면 옷이 사람을 입어요. 사람은 없어지고 옷만 남아요. 그게 바로 워스트 드레서예요.”

그는 옷 추천 뿐 아니라 연예인들의 레드 카펫 밟을 때 옷에 따라 인사하는 법, 포즈 증을 다 가르친다. ‘이 드레스에는 작은 백도 들어서는 안된다’, ‘이 드레스에는 손가락을 이용해 우아하게 옷을 집어 들어 올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등 많은 스타들이 그의 철저한 패션 철학을 선호하고 믿고 따른다.

“스타일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에티튜드예요. 아무리 키 크고 아무리 날씬해도 자신감 없는 사람들은 달라요. 예쁘지 않은데 남자들에게 인기 많은 여자들 있잖아요. 그 이유는 본인이 예뻐지려고 노력을 그만큼 했다는 것이고 또 그만큼 자신감이 붙어서 얼굴에 빛이 나요. 옷을 아무리 예쁘게 입는다고 해도 자신감이 묻어나지 않으면 소용없죠. 종이 한 장 차이에요. 과하면 잘난 척과 교만함이 되기 쉽기 때문에 당당하면서 겸손하고 마치 ‘서핑’하듯이 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에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연예인들의 ‘의상 협찬’에도 그의 몫은 크게 작용한다. 아무리 유명한 톱스타일지라도 협찬이 안 될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에는 다들 서은영을 찾는다. 패션 업계에 그만큼 다양한 경력과 인맥을 갖춘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화려해 보이는 그이지만 의외로 값비싼 옷과 액세서리는 많지 않다. 자주 하고 다니는 큐빅 귀걸이는 2천 원짜리에 불과하고 평소 좋아하는 진주도 대부분 2~3만원 대의 모조품이다.

“이 옷도 엄마가 남대문 시장에서 사다주신 옷이에요. 얼마 전에 중저가 브랜드에서 옷을 4벌 샀는데 10만원이 조금 넘더라고요. 그런데 입고 나가면 다 어디 제품인지 물어봐요. 옷 어디에서 샀냐고 알려달라고 그래요. 패션은 조화의 문제이지 가격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가장 스타일리시한 연예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배우 김민희를 꼽는다. 그는 “김민희야 말로 뭐를 입어도 다 잘 어울린다”며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옷을 즐긴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만나왔지만 개인적인 친분을 나누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가 세운 일종의 룰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 가는 것 같다”는 그는 사람들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어울려다니지 않으며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섭섭해 하는 사람들도 많다. 서은경은 “수도꼭지를 갑자기 확 틀면 물이 사방으로 다 튀고, 너무 적게 틀어놓으면 녹슨다”며 인간관계도 같다고 말한다.

다양한 스타일 관련 서적들을 통해 대한민국 여성들의 패션 멘토로 앞장서 있는 그는 올해에는 두 권의 책을 펴냈다. 자신이 사랑하는 101가지 아이템을 한데 모아 엮은 ‘서은영이 사랑하는 101가지’와 잡지에 기고하던 원고와 방송에 출연하며 다루었던 내용을 담은 ‘베티에게 물어봐’ 등이다. 그것도 모자라 오는 10월 또 책을 낸다. 무려 6년간 공을 들인 책이다. 제목은 ‘서은영의 아름답고 재미있는 명품 이야기’. 명품에 대한 오해 그리고 시간과 열정이 만들어낸 장인들의 숨은 이야기 등을 직접 6년 간 해외 골목골목을 누비며 완성한 책이다.

최근에는 ‘올리브쇼’ 외에 ‘더 스타일리스트’라는 프로그램에도 출연 중이다. 국내 유명 스타일리스트들이 함께 출연해 컨설트 프로젝트를 수행해 나가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가 컨설팅을 하러 가면 다들 반신반의 하며 우습고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8년 가까이 디자인한 경험으로 습득한 패션 전문 용어, 공장이 돌아가는 프로세스, 적절한 가격 까지 정확히 제시를 하면 다들 그때부터 상대방의 태도가 달라진다.

“연예계나 패션계는 똑같이 다 험난하고 외로워요. 쉽게 잊혀질 수 있고요. 기획을 해줘야 하는데 그럴 사람이 별로 없어요. 기획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리스트로서의 길을 열어주고 싶어요.”

패션 잡지 새내기 기자의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몇 년전 큰 인기를 끌었다. 자연스럽게 대중들은 패션 업계 사람들의 일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저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고 사실 화가 났었어요. 정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쓰고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패션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죽을 듯이 일을 하거든요. 진짜 최선을 다해 일해요. 그게 단지 ‘옷’이다보니 사치로 보이기 쉽죠. 하지만 어떠한 필드보다 이를 악물고 일하는데 그 가치가 폄하되는 경우가 많아요. 누구보다 열정이라는 본질에 가깝고 진지하게 일을 해요.”

스타일리스트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함부로 안 덤볐으면 좋겠어요. 정말 힘든 곳이거든요. 항상 인생에는 가장 밝은 빛이 있을 때는 가장 어두운 빛이 바로 옆으로 와요. 뎃생할 때 그렇거든요. 가장 하이라이트를 밝게할 부분 바로 옆에는 가장 어둡게 칠해줘요. 밝고 화려한 연예계와 패션계는 더 지독한 암흑 같은 세계가 있어요. 견뎌내고 이겨내지 않으면 밝은 빛을 즐기기도 전에 암흑 속에 흩어지게 돼요.”

서은영이 말한 ‘에티튜드’의 본질은 무엇일까. 인터뷰를 마치고 스튜디오를 나서며 생각한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지도 흐리지도 않은 날씨, 폭염도 이제는 막바지다. 심호흡과 함께 어깨와 가슴을 펴며 씩씩하게 발걸음을 뗐다.

/ 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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