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스페셜 윤동주는 젊은 시절 서울에서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41년 가을 일본으로 항했다. 조국에서의 마지막 시 ‘참회록’을 쓴 직후였다. 도쿄의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윤동주는 한글 사용이 금지됐음에도 일본 땅 한복판에서 한글로 된 시를 썼다. 결국 윤동주는 1943년 7월에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으로 체포됐다. 그리고 1945년 2월 16일 도쿄에서도 한없이 멀리 떨어진 낯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생체실험의 영향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윤동주는 일본에서 5편의 시를 남겼다. 친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지켜낸 그의 시는 광복 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1970년대 후반 실증적 연구가 이뤄지면서 윤동주의 시는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윤동주를 기리고 그의 시를 즐겨 읽는 일본인 모임도 생겼다. 윤동주의 무엇이 일본인들의 가슴에 다가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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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지신진(智新鎭) 명동촌(明東村)의 윤동주 생가. |
‘MBC 스페셜’은 4일 오후 11시5분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을 다룬 ‘가을, 윤동주 생각’을 방송한다. 한국에서 세 번째 가을을 맞는 일본인 유학생 기시 가나코는 윤동주의 시를 접하고 그의 작품 세계에 빠져들었다. 결국 그는 직접 윤동주의 흔적을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고 윤동주의 조카인 윤인석 교수를 찾아간다. 윤 교수는 1948년 발간된 윤동주의 첫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을 비롯해 윤동주의 유작과 유품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가 조심스레 공개한 유품들 앞에서 기시 가나코는 끝내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윤동주의 흔적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간 기시 가나코는 윤동주를 연구해온 와세다대 오무라 마스오 교수와 윤동주 시비건립위원회원인 안자이 이쿠로 교수 등을 만나 그들이 윤동주를 사랑하는 이유를 들어본다.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의 초대 대표 니시오카는 윤동주의 ‘서시’에서 발견한 매력을 ‘매직’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신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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