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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선생님 영전에 드리는 글

입력 : 2008-08-01 09:29:01 수정 : 2008-08-01 09: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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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은 고통의 천형”이라 하신 선생님 많은 후배들에게 빛과 예술적 영감 줘 김 명 곤 (배우·前 문화관광부장관)



추모의 글을 쓰려니 좀 더 선생님의 일상에서 가까이하지 못한 저의 무심함 때문에 부끄러움이 밀려옵니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1992년 7월 말, 임권택 감독님으로부터 ‘서편제’의 각색과 출연 제의를 받은 ‘사건’으로부터 시작됐지요. 그날부터 저는 ‘남도사람’이라는 연작소설집 속에 실린 ‘서편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등의 단편들을 꼼꼼히 읽고 각색을 위해 선생님과의 만남을 준비했지요.

각색자와 원작자와의 만남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작자의 문학적 명성이 크고 높을수록 각색자는 더 큰 짐을 지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술자리에서 각색에 대한 저의 고민을 듣고 나서 선생님은 뜻밖에도 이리 말씀하셨지요.

“소설과 영화는 엄연히 다르니 김 선생이 하고 싶은 대로 각색하시오. 그 대신 우리 막걸리나 자주 마십시다.”

그 후로 선생님의 고향인 장흥에도 함께 방문하여 치매에 걸려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님을 뵙기도 했고, 편하게 술잔을 나누는 자리도 여러 번 있었지만, 선생님은 단 한 번도 각색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은발을 쓸어 올리고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며 은근하게 좌중을 유도하시는 선생의 인품에 반했습니다. 또 가느다란 담배가 입에서 떠나지 않고 하얀 연기로 피어오르는 모습은 선생님의 ‘트레이드 마크’인 멋진 은발과 어울려 묘한 매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하얀 연기가 선생의 수명을 앗아간 원흉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선생님의 판소리에 대한 애정과 식견은 저를 능가했습니다. 선생님은 저 역시 독문학도였다는 걸 알고 “우째 이런 일이!”하고 놀라며 판소리와 독문학으로 이어진 우리의 인연을 신기해하고 자랑스러워하셨지요. 그 뒤 저하고는 ‘조만득씨’라는 중편소설을 각색, 연출한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로 그 귀한 인연이 이어졌지요. 그 연극을 할 때도 선생님은 즉석에서 허락하시고, 각색에 대해 저에게 무조건 일임하시고, 공연을 보시고 진심으로 칭찬해 주셨지요. 게다가 ‘서편제’는 청룡영화상 주연 남우상을 저에게 안겨 주었고,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로는 현대연극상 최우수작품상과 연출상, 남우주연상 등을 휩쓸었으니 선생님과의 인연은 저의 인생에 영광의 빛을 더해 주었습니다.

수많은 감독과 연출가, 작가들에게 영감과 명예를 안겨 주신 선생님. 그러나 그런 화려한 빛의 그늘에 침잠하여 ‘창작의 고통은 천형’이라고 하신 선생님의 그 웅숭깊은 부끄러움, 고통, 죄의식, 낯섦은 우리를 엄숙한 내면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한 번 읽으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우리 영혼의 주위를 맴도는 선생님 작품의 마력은 바로 그 깊은 내면의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것 아닐까요?

‘소설 쓰기보다 힘들게 몸과 싸우다가’ 돌아가신 선생님의 영전에 삼가 ‘서편제’에서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셨던 ‘이 산 저 산’ 단가의 가사를 바칩니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구나/ 나도 어제는 청춘이더니/ 오늘 백발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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