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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살인ㆍ방화는 `반사회성인격장애'의 전형

입력 : 2008-10-21 09:48:19 수정 : 2014-01-27 11: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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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강남에서 발생한 30대 무직자의 고시원 난동ㆍ방화사건은 전형적인 `반사회성 인격장애(사이코패스.psycho-path)'의 증상 가운데 하나라는 게 전문의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보통 사회적 규범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속이며,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특징을 보인다. 특히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못하는 등 책임감이 없고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도 뉘우침 없이 합리화하는 등의 경향이 있다.

이들은 철저히 자신을 숨긴 채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오다가 이번 사건의 주인공처럼 어느 순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곤 한다.

이들은 반사회적인 일탈행위를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이 전혀 없는 `성격장애'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흔히 `사이코'라고 말하는 정신질환과도 구분된다는 게 전문의들의 설명이다.

우리 나라에서 '반사회성인격장애(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몇년 전 온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판결 전 조사에서 `사이코패시(psychopathy.사이코패스 증세)' 진단을 받으면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양대학교 병원 신경정신과 박용천 교수는 "보통 이런 `묻지마 살인'은 자살을 하고 싶은 욕망과 남을 죽이고 싶은 욕망이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라 볼 수 있다"면서 "그동안 축적된 분노가 안쪽과 바깥 쪽으로 모두 터지면 `누구라도 좋으니 남도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는 묻지마 살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의들은 이런 사건이 대개 어릴 때부터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아온 분노가 축적돼 오다가 그게 쌓이고 쌓여 분출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했다.

즉 평소 불만을 풀어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쌓아온 사람들에게 잦은 현상이라는 것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이민수 교수는 "흔히 공격적인 행동 뒤에는 무의식적인 동기가 숨어 있으며 이를 잘 해결하지 못한 결과가 살인이라는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면서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았거나 무시당하고 학대받은 과거의 경험을 가지게 되면서 늘 적개심과 불안감을 안고 살게 된다"고 분석했다.

또한 이들은 커가면서 주위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지만 반복해서 좌절을 경험하게 되고 점차 자신이 겪는 실패와 좌절을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가 하면 적개심을 잘 참지 못하고 쉽게 분출하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특히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보다는 자신과 달리 경제적인 여유가 있거나 자신이 갖고 싶었던 것을 가진 자에게 더욱더 큰 적개심을 나타내게 되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극도의 흥분상태에 이르렀을 때 `살인'이라는 행동으로 폭발해 버린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상현 동국대 범죄심리학과 명예교수(한국 범죄심리학회 고문)는 "이번 피의자는 오랫동안 불안한 생활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면서 "절망적인 생활을 하다가 어떤 계기가 생겨 과격한 행동을 한 점에서 인격장애의 하나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표창원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다른 사람을 가해자로 보는 인식이 오랫동안 축적돼 있다가 사회의 모든 걸 부정하고 잘못됐다고 하면서 불만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됐을 것"이라며 "사회의 권력자나 사회를 대표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자 접근이 가능한 건물과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표 교수는 이 사건을 2003년 대구 지하철방화사건, 동해시청 여자 공무원 살해사건, 홍제동 초등학생 습격사건 등과 같은 맥락의 사건으로 봤다.

하지만 이런 행동만 가지고 반사회적인격장애 등의 진단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유범희 성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평소에 자기조절능력이 약한 사람이 사회와 자기 자신에 누적된 불만이 폭발해 발생한 `화풀이 범죄'로 보인다"면서 "이러한 사건은 개인차원의 문제이기보다 사회 전체적 분위기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진단했다.

즉 사회적 긴장도가 높아지거나 불경기, 실업자 증가 등 사회적 아노미 상태에 처하면 개인의 이익 차원보다는 화풀이 차원에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묻지마 범죄'가 발생하는 만큼 사건 하나만 가지고 피의자를 반사회성인격장애로 결정짓기는 어렵다는 게 유 교수의 설명이다.

유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은 외국도 마찬가지로, 묻지마 범죄가 증가하는 시기는 집단적 소속감이 느슨해지고 스트레스가 커졌을 때"라며 "당사자들은 이런 행동으로 일시적 긴장감을 해소하지만 이 행위가 앞으로 미칠 파장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과 같은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평소 반사회성인격장애와 유사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전문의들은 입을 모았다.

박용천 교수는 "우울증이나 자폐증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주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요새 힘든일이 뭐냐'고 자주 물어 불만을 그때그때 `압력 밥솥에서 김이 빠지듯' 풀어주는 게 참사를 막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이민수 교수도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으며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만 한다"면서도 "그러나 그들도 우리 가정과 사회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한 피해자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만큼 우리 주위에 고립감·좌절감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 둘러보는 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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