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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공연장 관람예절이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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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10-23 20:34:04 수정 : 2008-10-23 20: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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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섭 한양대 연구교수·문화평론가
아름다운 자태의 무용수가 멋진 피날레를 연출하는 중에 느닷없이 객석 좌측에서 괴성과 함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감동의 부라보와는 거리가 먼 아우성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그쪽 객석이 웅성거리더니 교복 차림의 관객들이 우르르 몰려 나간다. 두 번째 한국무용 공연의 마무리 때 벌어진 일이다. 이번에는 오른쪽 객석에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더니 그들 역시 이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이어진 공연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고, 마지막 다섯 번째 공연 무렵에 와서는 객석 반이 텅 비어 있었다. 지난 14, 15일 대학로 아르코극장에서 열린 서울무용제 개막공연에서 벌어진 꼴불견이었다. 국내 무용계의 가장 큰 잔치 중 하나인 서울무용제에서 무용계에 꽤 알려진 중진과 다크호스들이 축하잔치를 벌이는 무대가 이러하니 다른 공연은 어떠하겠는가.

클래식 공연에서 관람 에티켓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때때로 국제적 망신이 되기도 한다. 연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노래하던 외국 소프라노가 휴대전화 벨 소리에 놀라 화를 내며 공연을 그만둔 적도 있다. 작은 공연관람 예절 하나가 우리 문화의식 수준으로 연결되고 국가 문화 이미지 손상으로 돌아온다. 공연으로서 창작물을 세상에 선보이는 예술 분야에서 무대는 그 예술가의 모든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예술적 고뇌는 물론 피와 땀의 노력에 대한 경의는 공연관람 예절에 앞서 예술가에 대한 기본 예의이다. 그 공연 질의 높고 낮고의 평가나 흥행이 되고 안 되고는 다른 차원의 논의이다.

이날 공연장 관람 예절은 이들이 문화예술에 종사코자 하는 후속 세대라는 점에서 개탄할 노릇이다. 그들의 행태로 보면 자기 선생의 공연에 자발적이든 타발적이든 박수부대로 동원된 것 외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문제는 이것이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데서 무용예술계의 심각한 우려가 있다. 내 선생, 내 동창, 내 식구 공연에만 악을 써서 ‘열광’하고 남의 공연은 안중에도 없으니 분별 없는 학생들의 태도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도 안타깝다.

그렇게 연줄부터 배우니 제대로 된 예술교육이 되겠는가. 세세한 기예는 배울 수 있을지언정, 인간사랑의 예술혼을 배양하기에는 기본이 문제가 된다. 자기 식구만 인정하는 집단이기주의는 결국 패거리 예술로 귀착된다. 이런 판이니 무용공연이 대부분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고, 대중의 관심과 기호와는 동떨어진 악순환 구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문화의식이 아직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 해도 예술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꿈나무들은 기본이 바로 서야 한다. 인간정신의 가장 고귀한 영역인 미의 창작, 예술에 종사하는 일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 없이 어떻게 영혼의 열린 몸짓을 일궈낼 수 있겠으며, 국제무대에서 열린 사고를 가진 세계적 예술가가 되겠는가. 그에 앞서 무대에서 예술적 재능을 펼쳐야 할 예술 후속 세대가 무대에 대한 기본적 예의도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들이 서야 할 무대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는 것은 자기를 배신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영혼을 불어넣는 예술교육에 앞서 무대에 대한 기본예의부터 가르쳐야 한다. 나쁜 학생은 없다. 나쁜 선생만 있을 뿐이다.

감성적 예술 창작도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냉정한 이성의 판단이 필요하고, 그 사회적 소통을 위해 인간사회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나는 무용평론가로 등단하던 2002년에 이러한 공연 현장에서 일말의 예의도 갖추지 않는 무용 차세대의 패거리 행태부터 고쳐 나가야 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로부터 6년이 훌쩍 지난 지금 고스란히 그때 그 취지로 다시 글을 쓰는 심사가 심히 편치 않다.

이장섭 한양대 연구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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