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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심사평] 치밀한 얼개·탄탄한 문장…시작은 은근하나 끝은 뜨거워

입력 : 2009-01-30 09:47:54 수정 : 2009-01-30 09: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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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서울 프레스센터 세계문학상 최종심사 현장에 모인 심사위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구효서, 박범신, 김미현, 김형경, 황석영, 김화영, 은희경, 하응백, 서영채씨.
이제원 기자

본심에 오른 네 편의 작품은 각기 다른 경향을 보여주면서도 일정한 문학적 수준을 확보하고 있다. 네 편 모두 당선작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역량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심사 소회로 제시되는 의견들은 절대적 장단점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관점에 따라 장점이나 단점이 되기도 하는 양면성을 지닌다는 점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머리엔 도넛, 어깨엔 날개’는 독특한 알레고리 속에 어른을 위한 동화류의 서사를 담아낸 작품이다. 천사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을 등장시켜 천사를 필요로 하는 세태를 고찰하고 있다. 서사의 전개나 주제의 형상화에 무난하게 성공하고 있지만 바로 그 무난함으로 인해 큰 단점이 없는 만큼 큰 매혹도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나치게 잘 짜인 플롯의 억지스러움, 계몽적인 주제와 결말 등도 언급되었다.

‘나의 블랙 미니 드레스’는 88만원 세대의 자기 탐구와 자아 찾기를 뼈대로 하는 세태소설이다. 그 세대의 고민을 정직하게 탐사하고 있으며,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을 동원하여 서사를 충실하게 엮어내고 있다. 재미있게 잘 읽힌다는 점에서는 심사위원의 의견이 일치했다. 드라마 플롯을 차용한 듯 병렬되는 전개, 소재만큼 경쾌하지 않은 문체, 느닷없이 계몽적으로 전환되는 마무리 등은 아쉬움으로 꼽혔다. ‘소박한 집합론’은 늙은 게이와 왕따 소녀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소외된 인물들의 상호 이해와 고통을 과장하거나 엄살 부리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 내고 있는 점이 돋보였다. 소설적 플롯을 제대로 갖춘 점, 간결하고 절제된 묘사 등도 미덕으로 꼽혔다. 불필요하게 과잉 폭력적인 묘사, 게이에 대한 균형 잡히지 않은 시각, 작가가 지나치게 이야기를 장악하고 있어 답답한 점 등은 지적되었다.

 

◇ 첫째줄 왼쪽부터 김화영 하응백 서영채, 둘째줄 왼쪽부터 황석영 김형경 은희경, 셋째줄 왼쪽부터 박범신 구효서 김미현.

당선작으로 뽑힌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원에 갇힌 두 남자의 탈출기를 그린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이다. 거듭 탈출을 꿈꾸고 또 시도하지만 늘 그 자리에 머무는 일상에 대한 은유처럼 소설은 진지한 의문을 가슴에 품게 만든다. 폭넓은 취재를 바탕으로 열심히 쓴 작품이라는 점에 심사위원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치밀한 얼개, 한 호흡에 읽히는 문장, 간간이 배치된 블랙 유머 등도 인상적이었다. 문체가 내면화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오히려 역동적인 행동을 묘사함으로써 그 움직임 속에 심리를 담아내는 미덕으로 읽는 의견도 있었다. 도입부가 잘 읽히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발자크 소설처럼, 처음 60쪽가량의 지루함만 참아내면, 그리하여 소설적 상황과 등장 인물들과 친해지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몰입하여 읽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소설은 마치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올리듯 주인공과 독자를 몰아붙이지만 일단 꼭대기에 다다르기만 하면 나머지 길은 흥미진진하고 가속도가 붙는 활강장이 된다. 소설의 막바지, 주인공의 내면 깊은 곳에 닿아 그곳에 눌러 두었던 무서운 진실과 만나는 대목은 가슴 서늘한, 뜨거운 감동을 준다.

김화영 황석영 박범신 구효서 김형경 은희경 하응백 서영채 김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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