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은 천주교 최고위 성직자지만 장례 절차는 일반 사제 장례에 비해 특별하지 않다. 관도 일반 사제가 쓰는 것과 같고 무덤이나 비석엔 특별한 장식이 없다.
김 추기경이 가난한 자와 함께하기를 간절히 소망한 그 모습 그대로다. 생전에 김 추기경은 자신이 어느새 ‘귀족’이 돼 버렸다고 반성할 정도로 늘 검소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려고 애썼다.
19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김 추기경 회고록 등에 따르면 추기경은 1979년 1월 수원의 한 수도원으로 한 달간 피정(일상에서 벗어나 묵상과 침묵기도를 하는 종교적 수련)을 갔다. 그는 이때 “나는 가난한 집 출신이다. 그런데 신부가 되면서 가난을 점점 잊어버리더니 주교, 대주교, 추기경으로 올라가면서 불행하게도 귀족이 되어 버렸다”고 탄식했다.
앞서 이발하러 들른 동네 이발소에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아까 만난 사람들이 내가 이런 큰 방에 사는 줄 알면 놀랄 걸’ 하는 생각이 잠시 몰려왔다고 김 추기경은 털어놨다.
추기경은 빈민운동가 고 제정구 의원의 가난한 삶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추기경은 제 의원이 서울 양평동 철거민촌에서 살 때 “그 삶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 같은 사람은 흉내조차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추기경은 나중에 제 의원 등이 만든 경기도 시흥의 ‘복음자리’ 공동체에서 하루도 자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나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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