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와 통계청이 27일 발표한 ‘2008 사교육비 조사 결과’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개혁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득 수준과 부모 학력, 학생 성적이 높거나 좋을수록 사교육 지출이 높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됐다. 특히 정부의 영어 공교육 강화에 따른 ‘영어몰입교육’ 논란이 오히려 영어 사교육비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월평균 소득이 700만원 이상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47만4000원으로 100만원 미만 가구 5만4000원의 8.8배에 달했다. 사교육 참여율 역시 700만원 이상 가구는 91.8%에 달했지만, 100만원 미만 가구의 사교육 참여율은 34.3%에 불과했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상태에서 사교육에 쓸 돈 자체가 없다는 의미로, 결국 돈의 위력이 학력의 대물림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월평균 300만원 미만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가 20만원에 미치지 못한 반면 600만원 이상 가구는 한 달 평균 40만원 이상을 사교육에 투자하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부모의 학력 수준도 사교육비 지출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아버지 학력이 중졸 이하인 경우 한 달 사교육비로 9만3000원을 지출한 반면, 대학원 졸업일 경우 36만9000원으로 4배나 많았다. 어머니 학력 수준도 마찬가지여서 중졸 이하(월 9만8000원)와 대학원 졸업(39만8000원) 간에 4.1배 차이가 났다.
성적이 좋은 학생일수록 사교육비 지출과 참여율도 높다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성적이 상위 10% 이내인 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와 참여율은 각각 31만5000원, 87.7%에 달했다. 반면 성적이 하위 20% 이내인 학생의 사교육비 지출과 참여율은 각각 12만9000원, 51.6%로 저조했다. 성적이 높은 학생은 주로 ‘선행학습’을 위해, 성적이 낮은 학생은 주로 학교수업 보충을 위해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조사되면서 학생 간 성적 차를 더욱 키우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영어몰입이 사교육 늘렸다=이번 사교육비 조사 결과는 ‘방과후 학교’ 등 정부의 사교육 경감책의 긍정적 측면도 나타났지만, 정부 정책이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총 사교육비 20조9000억원 가운데 일반교과 사교육비는 16조92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영어과목 사교육비는 40.5%에 달하는 6조8513억원에 이른다.
과목별로 보면 지난해 국어·영어·수학 등 일반교과 월평균 사교육비는 18만8000원으로 전년보다 5.6%에 증가했다. 하지만 영어과목 사교육비는 월 7만6000원으로 전년 대비 11.8%나 올랐다. 일반교과 평균 상승률의 배가 넘는다.
수학(6만2000원, 8.8% 증가), 국어(2만3000원, 4.5% 증가) 등 다른 과목에 비해 증가폭이 훨씬 컸다. 논술이 12.5% 감소한 것은 올해 대입전형에서 상당수 대학이 논술고사를 폐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영어 사교육비가 크게 늘어난 것은 현 정부 출범 당시 인수위 시절부터 촉발된 영어 몰입교육 논란을 비롯해 말하기 위주의 영어교육 강화, 초등 영어수업 시간 확대 등 잇따라 발표된 영어 관련 정책들이 영어 공교육 수준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학부모들의 사교육 경쟁도 유발했다는 분석이다.
또 영어뿐만 아니라 초중고교 학사 운영 및 대입 자율화, 국제중 및 자율형 사립고 설립, 학교 정보 공개, 학업성취도 평가 등 지난해 추진된 교육정책들도 직간접적으로 사교육비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교과부 양성광 인재정책분석관은 영어 사교육비 증가와 관련해 “글로벌 시대를 대비한 영어학습 증가와 환율 상승에 따른 해외 어학연수 수요의 국내 흡수 등이 영어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교육업체 매출도 지난해 크게 늘었다. 교과부가 특정 사교육업체 2곳의 매출액을 살펴본 결과 A, B업체의 매출액은 2007년 각각 628억원, 446억원에서 지난해에는 830억원, 786억원으로 무려 50% 늘었다.
김기동 기자 kid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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