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양책 등 둘러싸고 각국 성토 잇따를 듯 4월 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국제사회에 ‘기 싸움’이 시작되고 있다.
각국 정상들은 “글로벌 경제·금융위기를 타개하자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세부적인 경기부양과 금융규제 방안을 놓고 벌써부터 자기 주장을 내놓고 있다. 견해차는 좀체 좁혀지기 힘들 것 같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는 물밑 접촉에 나서지만 “G20 정상회의가 뚜렷한 행동계획을 도출하지 못한 채 ‘말의 성찬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발 물러선 미국=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사실상 첫 번째 공식 해외순방에 나선다. 그는 순방 중 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글로벌 리더로서 지도력을 처음 시험받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여러 분야에서 동맹국과 적대국으로부터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G20 정상회의에서 미국식 자본주의와 그의 경제회생 처방에 대한 분노를 경험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29일 보도했다. 그만큼 그의 첫 국제무대는 녹록지 않다는 얘기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초 각국이 자국 국내총생산(GDP)의 2%를 경기부양을 위해 사용하자고 제안할 방침이었지만, 미국의 경제회복 모델을 다른 나라가 벤치마킹하도록 유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워싱턴포스트는 29일 브루킹스연구소의 자료를 인용해 G20이 현재 계획했거나 집행 중인 경기부양 규모가 1조6000억달러에 이르며, 이 가운데 미국이 8410억달러로 절반을 웃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2040억달러로 뒤를 이었고 독일(1300억달러)과 일본(1040억)이 각각 3, 4위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스페인(750억달러), 사우디아라비아(500억달러), 영국(410억달러), 캐나다(440억달러), 러시아(300억달러) 한국(260억달러), 프랑스(210억달러) 등 나머지 국가는 편차가 심했다.
마이클 프로먼 백악관 국제경제 담당 부보좌관은 “경기부양책 확대를 다짐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며 “우리의 할 일은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해 종전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유럽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성장을 위해 과도한 돈을 쏟아부을 경우 경제회복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위기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융규제는 여전히 엇갈려=글로벌 금융규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 간 견해도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27, 28일 이틀간 칠레의 비냐델마르에서 열린 세계진보정상회의에 참석해 “시장은 자기규제를 할 수 없고, 감독을 받지 않는 은행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며 “은행이 글로벌화된 만큼 국경을 넘는 관리·감독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도 “세계 경제는 규제가 없어 거대한 카지노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중국과 프랑스는 G20 정상회의에서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를 반대하며 미국을 곤혹스러운 처지로 내몰 가능성도 짙다.
억만장자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는 영국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G20 정상회의가 재앙을 막을 마지막 기회”라며 “그러나 나라마다 이견이 많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병력 증파 등 군사·외교 현안도 논의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나토군의 아프간 증파에 반대하고, 러시아는 폴란드에 나토 미사일방어체제를 설치하려던 계획을 무산시키려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 병력 증파에 반대하는 나토 회원국을 상대로 설득을 시도조차 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주춘렬 기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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