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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정치 외치더니 ‘검은 돈’ 추문… ‘40년 총리 꿈’ 접나

입력 : 2009-04-19 12:03:44 수정 : 2009-04-19 12: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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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기로 선 오자와 日 민주당 대표 정면돌파 승부수 향배는…
2009년 3월24일. 일본인들의 시선은 온통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에 쏠렸다. 간판타자 스즈키 이치로(鈴木一朗)가 10회 초 승부를 결정짓는 극적인 역전타를 때리는 순간 일본 열도는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TV 앞에 모였던 일본 국민들은 저마다 “이치로! 이치로!”를 연호하며 박수를 쳤다. 결승전까지 부진을 거듭했던 이치로는 막판 중요한 승부에서 자신의 진가를 다시 한번 드높였다. 그 환희의 순간 도쿄의 민주당 당사에선 또 다른 이치로가 ‘벼랑끝 승부’에 나섰다. 자신의 비서이자 정치자금 회계책임자인 오쿠보 다카노리(大久保隆規)가 바로 이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됨에 따라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거취를 공개적으로 밝혀야 했다. 그의 선택은 ‘정면돌파’였다. 그는 “나 자신이 수뢰나 범죄에 가담했다면 어떤 수사, 처벌도 받겠지만 그런 것이 없다는 점이 명백해진 것”이라며 대표직 고수를 선언했다. 두 명의 이치로 승부는 극명히 엇갈렸다. 야구판 이치로는 난세의 영웅이 됐지만 정치판 이치로는 ‘추악한 정치퇴물’로 전락했다.

◆40년간 키운 ‘총리의 꿈’=오자와 이치로는 건설회사 ‘니시마쓰’(西松)로부터 검은돈을 받은 스캔들이 나기 전만 해도 차기 총리직을 향한 ‘9부 능선’을 넘고 있었다. 2006년 민주당 대표에 오른 그는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여야 간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는 확실한 카드로 평가받았다.

집권 자민당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아소 다로(麻生太郞) 등으로 4번이나 당수가 바뀌는 동안 민주당은 항상 오자와의 단독 무대였다. 정치 여론조사의 주요 항목 중 하나인 ‘누가 더 총리에 적합한 인물인가’라는 질문이 ‘자민당 ○○○ vs 민주당 오자와’로 고정되면서 얻어진 프리미엄은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9월부터 금융위기로 일본 경제가 흔들리고 거듭된 실언과 정책 혼선으로 아소 총리의 인기가 추락하자 오자와의 주가는 상승했다. 지난해 12월부터 그는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아소를 제치기 시작했다. 지지율이 오르는 만큼 그의 당 장악력도 커져 갔다. 오자와 체제라면 늦어도 9월 시작될 중의원 선거에서 정권교체의 숙원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민주당 안팎을 지배했다. 1969년 정치에 첫발을 내디딘 오자와는 40년 만에 총리의 꿈을 이루리라는 기대로 부풀었다.

오자와는 2006년 이후 각종 선거에서 자민당과의 대결구도를 ‘부패무능한 낡은 정치의 자민당 vs 지방과 서민을 챙기는 깨끗한 민주당’ 구도로 잡아 연전연승했다. 그는 2000년 이후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곳곳에서 폐해를 드러내자 지역 격차를 줄이고 서민복지를 늘리겠다는 메시지로 ‘야당표’를 쓸어담았다. 실제로 자신은 뼛속까지 친미 보수주의자이면서도 정권교체라는 숙원을 이루기 위해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는 이념적 변신까지 선보인 것이다.

오자와는 특히 “나부터 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깨끗한 정치풍토를 만들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민주당의 집권과 자신의 총리 취임이야말로 부패하고 낡은 자민당식 보수정치판을 일소하고 일본 정치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자금 스캔들 파문=그런 오자와였기에 이번 정치자금 스캔들은 그의 40년 정치인생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중도 성향의 국민들 사이에서 ‘거짓말쟁이 오자와’ ‘믿을 수 없는 정치인’이라는 비난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가 대표직 고수를 선언한 3월24일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오자와는 아소 총리에게 역전당했다.

지난 13일 NHK 여론조사에서 오자와는 14% 지지율을 얻은 반면 아소 총리는 19%의 지지를 받았다. 두 사람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이런 여론의 추이는 그대로 선거판 표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바현 지사 선거(3월29일)과 아키타현 지사 선거(4월12일) 등 두 번의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참패했다.

상황이 이렇게 반전되자 오자와의 당 장악력까지 흔들리고 있다. 정권교체의 운명을 결정할 중의원 선거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오자와 간판’으로 승리하기 어렵다는 회의론이 당내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특히 오자와 대표를 정점으로 한 간 나오토(菅直人) 대표대행과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간사장으로 이뤄진 ‘트로이카 지도체제’에 미묘한 균열이 시작되고 있다.

내심 ‘포스트 오자와’를 노리는 간 대표대행이 최근 오자와에게 “대표직을 관두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간 대행은 즉각 부인했지만 그가 오자와와 거리를 두고 있는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부대표 등과 모종의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는 후속 보도까지 나오면서 오자와 대표와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친(親)오자와 의원들도 현 오자와 대표체제를 계속 밀고 나가되 오자와가 사퇴할 최악의 사태가 생길 경우 하토 간사장을 차기 대표로 밀기로 내부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자와 대표는 의원 50여명의 ‘오자와 그룹’을 이끌고 있고, 하토 간사장도 의원 30여명의 그룹을 주도하고 있다. 간 대행와 마에하라 부대표는 각각 의원 30여명의 독자 계파를 갖고 있다. 양측이 합종연횡해 당권을 놓고 세대결을 벌일 경우 치열한 집안싸움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당분열을 우려한 원로와 소장파들 사이에선 국민들 사이에서 유력한 ‘포스트 오자와’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부대표를 제3의 대안으로 내세우자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은 세를 형성하고 있다.

당 안팎에서 벼랑 끝에 몰린 오자와는 최근 이런 당내 상황에 말을 극도로 아끼고 있다. 지난달 31일 “정권교체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진퇴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밝힌 후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행보에선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대표직을 미련없이 던지겠다는 살신성인의 뜻도 엿보이지만, 동시에 정치판에서 끝까지 밀려나지 않으려는 마지막 노욕(老慾)도 읽힌다. 과연 야구판 이치로처럼 그가 역전타를 때려낼 수 있을까. 일본 정치의 관심이 온통 그의 다음 행보에 쏠리고 있다.

도쿄=김동진 특파원 bluewin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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