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중국 상하이(上海)시 황피난루(黃陂南路). 청명한 푸른 하늘에 검은색과 붉은색 벽돌의 고즈넉한 2층짜리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공일대회지(中共一大會址). 88년 전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전당대회 격)가 열린 혁명의 성지다. 평일임에도 수많은 학생들이 견학을 와 중국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을 잉태한 현장을 배우려는 모습이 엄숙하다. 내부 사진 촬영은 안 된다며 눈썹을 치켜뜨던 경비원은 “혁명의 성지이기 때문에 단체 방문이 많다”고 말한다.
1921년 7월 23일. 당시 중국 전역의 공산당원 53명을 대표하는 13명과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 대표 2명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신중국 건국의 아버지 마오쩌둥(毛澤東)도 그중에 있었다. 프랑스조계(租界) 당국의 수사로 7월30일 회의를 중지하고 저장(浙江)성 자싱(嘉興)으로 장소를 옮길 때까지 이곳에서는 중국공산당 창당 이념이 담긴 당강(黨綱) 초안이 마련되고 토론이 이뤄졌다.
당강은 이렇게 선언했다. ▲자본가계급(부르주아)의 국가정권을 전복하고 ▲계급소멸 때까지 무산계급(프롤레타리아)의 독재를 인정하며 ▲사유제 폐지와 생산수단 몰수를 통해 공유제를 한다.
역사는 아이러니다. 중국공산당의 모태였던 상하이는 이제 중국식 시장경제 발전의 상징이 됐다. 1990년 4월 신특구 지정 후 농토였던 이 땅은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됐다. 초현대식 시설의 마천루, 지하철, 국제공항, 항만은 세계 선두급 국제도시임을 자랑한다. 이곳은 현재 내년 엑스포 준비 공사가 한창이다. 세계적인 금융허브로 또 한 차례의 웅비를 준비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푸둥(浦東)신구는 중국식 시장경제 발전의 상징이 됐다. 2006년 1월 이곳을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천지가 개벽했다”고 말했다. 황푸(黃浦)강을 내려다보는 둥팡밍주(東方明珠)탑이 중국 경제의 위상을 드러내듯 하늘을 찌르고 있다. 상하이=김청중 특파원 |
중국 경제의 급부상과 함께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것이 바로 위안화의 국제화 문제다.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는 위안화의 앞날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하는 분위기이다. 실제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타격을 받자 막강한 경제력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 역할론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위안화의 기축통화를 위한 단계적 평가절상이 전망되고, 국제통화시스템의 개혁을 주장하는 중국의 목소리도 심상찮다.
과연 위안화는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 시기상조론이라는 주장이 적지 않다. 주원인으로 ▲미국의 견제 ▲위안화 태환의 부자유성 ▲금융리스크를 방어할 관리 감독체계 미비 등이 지적된다.
이철성 한국은행 베이징사무소장은 “적어도 10년 이상의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소장은 위안화가 완전한 자유 태환이 이뤄지지 않고, 국외결제수단으로서의 기능이 약하고, 달러화의 위상이 아직 굳건함을 이유로 들었다.
중국도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실제 7월부터 상하이·광저우(廣州)·선전·주하이(珠海)·둥관(東莞) 본토 5개 도시와 홍콩·마카오 간에 시범실시한 위안화 무역결제액도 기대 이하라는 평가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지난 10일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서 열린 하계 다보스포럼에서 “위안화의 국제화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 총리는 “일국의 통화가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아 주요 유통통화가 될지 여부는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라며 “조건이 성숙하지 않으면 (위안화 국제화는) 빨리 하고 싶어도 빨리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위안화가 동남아·화교경제권을 중심으로 국제통화로 부상할 가능성은 작지 않아 보인다. 영국 던햄대 고든 정 당대(當代)중국연구소(CCCS) 부소장은 “중국 위안화는 대만, 홍콩, 동남아 일부 나라에서 결제수단으로 부분적으로 개방됐다”며 “위안화의 국제화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희태 우리은행 중국총행 행장은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인한 위안화의 영향력 증대와 중국 정부의 위안화 국제화 노력으로 동남아 및 화교경제권(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을 중심으로 국제통화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삼성경제연구원은 ‘위안화의 글로벌 전망’이라는 보고서에서 “중국은 초(超)주권 기축통화 발행이 미국의 반대로 실현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위안화의 글로벌화를 강구하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엔화보다 위안화가 아시아를 대표해 달러화, 유로화와 맞서는 아시아통화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상하이=김청중 특파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