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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플럼 빌리지를 찾아서 '나에게로 가는 길'] <1>천안 광덕산 호두마을 명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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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1-31 16:45:49 수정 : 2010-01-31 16: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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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으라…" 놓아버림의 행복을 찾다
물신주의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이 ‘마음’을 찾아나섰다. ‘솔 러시(soul rush)’ 현상이라고 불릴 만하다. 경쟁과 속도, 소음에 지친 도시인들이 마음의 평화를 가꾸기 위해 명상(수행)공동체에 몰려들고 있다. 국내에도 프랑스의 소문난 명상 마을 ‘플럼 빌리지’가 부럽지 않은 수행센터들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마음밭을 가꾸는 현장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6박7일 집중수행 프로그램에 참가한 수행자들. 이들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수행홀과 야외 공간에서 자율적으로 좌선과 경행을 번갈아 하며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한다.
허정호 기자
“내려놓으라, 미련없이 내려놓으라.”

충남 천안시 광덕산 자락의 명상센터 ‘호두마을’로 가는 길은 자연으로의 귀로였다. 단단히 키워낸 호두알들을 세상에 보시한 후 빈가지로 겨울을 견디는 호두나무들은 그 자체로 센터의 정신을 ‘설법’하는 전령사였다. 1만6500㎡가량의 대지 위에 수행공간인 대법당과 소법당, 수행자들의 숙소와 공양간, 4채의 황토방, 연못 등이 들어선 호두마을은 한눈에 규모와 정성을 갖춘 수행도량임을 알 수 있다. 위파사나 명상센터를 표방하며 2001년 개원한 호두마을은 불교 의식은 최소화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 수행 프로그램으로 언제나 수십명씩 머물고 있다. 이곳을 다녀간 이들은 프랑스에 틱닛한 스님이 세운 명상센터 ‘자두마을(플럼 빌리지)’이 있다면 한국에는 ‘호두마을’이 있다고 말한다.

◆6박7일 집중수행, 놓아버림의 행복을 찾다=6박7일간 집중수행 과정의 입제일인 지난 25일 호두마을을 찾았다. 마침 30여명의 수행 참가자 중에는 현직 목사도 있었다. 이곳의 주말, 집중, 상시수행 프로그램에는 타 종교인이 40%를 차지한다. 365일 언제든 머무르는 상시 수행자들이 초심자들과 어울려 자율적으로 수련한다. 주지인 능혜 스님은 “기존 종교의 기복성에 한계를 느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더 큰 환희심을 느낀다”면서 “타력 수행이 아닌 자력 수행으로 마음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이지 종교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광덕산을 방음벽 삼아 아늑하게 닦아놓은 수행터에서 새어나오는 것은 별빛과 딱따구리 소리뿐. 곳곳에 걸려 있는 ‘묵언’ 팻말은 현대인들에겐 금기가 아닌 자유의 선언이다. “이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불필요한 호기심과 말들로부터 벗어나라는 해방구 선언이다. 그래서일까. 기자는 1박2일 수행 참가 중 휴대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수행 첫째날 오후 7시 입제식과 함께 능혜 스님이 불전에 삼배를 드리는 법을 지도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삼배를 함으로써 공경하는 사람, 나를 낮추는 사람이 됩니다”라는 설명과 함께다. 수행홀에 놓인 것은 불상 하나. 불상은 깨달음을 성취한 수행자로서 부처에 대한 존경의 의미이지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이어 지도법사로 초청된 미얀마 우토다나 스님의 법문은 수행법 안에 담긴 불법의 정수를 전해주는 시간.

“스스로 지은 업과 업의 결과를 믿는 것만이 바른 마음가짐의 하나입니다. 선업과 불선업의 결과를 믿어야 선업을 실천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도의 길, 위파사나 수행을 실천하게 됩니다.”

부처가 설하신 ‘업’의 원인에 대한 법문이 이어진다. “용모의 미추는 왜 나뉠까요?”라는 우토다나 스님의 질문에 “성형수술 여부 아닌가요?”라는 대답이 나와 웃음이 터진다. “성을 많이 내고 화가 많은 사람들은 다음 생에 추하게 태어납니다. 누구에 의해서든 어떤 이유로든 어디에서든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위파사나 수행을 하면 그럴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화를 내려는 마음과 의도, 원인을 알아차리면 화가 소멸됩니다.” 전생은 몇억 광년 떨어진 시공간이 아니라 바로 나의 어제(과거)일 수 있다는, ‘업’은 내 스스로 노력을 통해서 가꿔나가야 한다는 깨달음이 찾아들 즈음 법회가 끝났다. 숙소로 돌아오니 밤 11시가 다됐다. 

◇천혜의 은신처가 따로 없는 ‘호두마을’ 전경.
◆다른 생을 살 수 있는 방법=
둘째날 새벽 4시, 수행홀에 들어서자 입제식에서의 가르침대로 좌선과 경행(經行·걸으면서 참선하기)을 번갈아 하는 수행자들로 이미 만원이었다. 위파사나는 다리에 쥐가 나도록 앉아서만 하는 수행이 아니다. 자유롭게 좌선과 경행을 번갈아한다. 집중을 통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하는 오문(五門·眼耳鼻舌身)으로 들어오는 모든 느낌과 마음의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방식이다. 수행자 각자가 원하는 때 행선할 수 있는 숲속 오솔길은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앉아 있을 때의 몸(물질)과 정신 상태가 걸으면서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일체의 무상함을 터득하는 길이다.

남방불교의 수행법에 따라 오후 불식(不食)도 지킨다. 오전 6시, 11시로 두 차례의 공양(식사)이 끝난다. 처음엔 세끼를 먹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지만 익숙해진 수행자들은 맑은 정신, 가벼운 몸을 가꾸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틀에 한번씩 지도법사(스님)와 일대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수행을 점검받는 시간도 마련된다.

명상에 관심이 많아 참가했다는 박유영(32·뮤지컬 작곡가)씨는 “자동차 소음조차 비켜난 이곳에 오니 평화가 절로 싹트는 듯하다”면서 “틱닛한 스님이 운영하는 미국 절에도 가봤는데, 한국에서 이렇게 종교적 차원을 넘어 몸과 마음을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나 기쁘다”고 했다. 이곳에서 일주일째 수행 중인 박석현(63·전 두바이 무역관장)씨는 “형이상학적인 간화선 수행에 비해 위파사나는 수행과정에서 스스로 진보됨을 느낄 수 있다”면서 “이리저리 날뛰며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야말로 실수의 근원인데, 감정을 제어하게 되면서 화와 욕심도 덜 내게 되더라”고 했다.

이 생에서 다른 생을 살 수 있는 방법은 미지의 오지 여행이 아니라 ‘내 마음으로의 여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호두마을을 나선다. ‘다른 사람의 거친 말들, 이미 했거나 하려는 남의 행위를 보지 말고 이미 했거나 하려는 자신의 행위만을 살펴야 한다’고 센터 출입문에 씌어진 문구가 가슴에 파고든다.

천안=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호두마을(www.vmcwv.org)의 정규 수행 프로그램에는 주말수행과 집중수행(6박7일)이 있다. 모든 수행은 새벽 4시부터 밤 9시까지 호두마을의 수행정진 일정에 따라 스스로 계율을 지키며 지도법사(우토다나·능혜 스님)의 지도에 따라 위파사나 수행을 한다. 위파사나란 내 몸과 마음, 감각을 객관적으로 관찰해 이 모든 것이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무상한 것임을 깨닫고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소멸시키도록 하는 수행법이다. 고대 인도에서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수행법이다.

새벽과 저녁에 예불 및 법문이 한 차례씩 진행되고, 그밖의 시간은 좌선과 경행에 집중한다. 지도법사와의 개별 인터뷰를 통해 수행과정을 점검받는 시간도 주어진다. 1∼2인 1실로 숙식을 제공하며 하루 최대 수용인원은 70여명. 수행 참가비는 하루 2만5000원이다. 미얀마 양곤의 슈웨우민 선원에서 수행을 지도하고 있는 큰스님 아신 테자니야 사야도를 초청하는 특별 수행 프로그램이 4월21일부터 9박10일간 마련된다. (041)567-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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