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아이티 지진 때는 규모 7에 최대 30만명, 2008년 5월 중국 쓰촨(四川)성 지진 때는 규모 8에 8만7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규모 8.8의 지진이 강타한 이번 칠레 지진에서는 28일 현재 사망자 수가 400여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칠레를 강타한 지진의 위력은 아이티에서 발생한 지진의 800∼1000배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규모에도 상대적으로 인명 피해가 적었던 건 칠레가 아시아의 일본처럼 비교적 지진에 대비를 잘해왔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칠레는 페루와 함께 ‘불의 고리’라고 불리는 환태평양 화산대에 속해 있어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지진 자체를 느낄 수 없는 무감(無感)지진을 포함해 한 해 200만번의 지진이 찾아온다. 규모 8 이상의 강진도 한 해 1회 이상 발생한다.
영국 BBC방송은 이번 지진에서 사망자 수가 크게 늘어나지 않은 이유로 국가의 ‘준비태세(preparedness)’를 들며 “칠레 정부와 국민은 평소 긴급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칠레는 지진 등 재난에 종합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재난정보관리국(Onemi·오네미)을 전국, 지역 단위로 운영하고 있다.
지진에 강한 인프라도 피해를 줄이는 데 큰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AP통신은 엄격한 건축 법규와 세계 어느 곳보다 많은 지진 전문가들이 지진 피해 예방과 재난 대비에 큰 도움을 줬다고 평했다. 건물들이 무너지긴 했지만 상당수 건물이 애당초 내진 설계로 지어진 덕분에 아이티 강진 사태에서 봤듯이 모래성처럼 완전히 무너져내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지진이 해저에서 일어났으며 지진 피해가 인구 밀집 지역을 피한 점도 운이 좋았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진앙은 수도이자 인구 최대 도시인 산티아고에서는 325㎞, 2대 도시 콘셉시온에서는 115㎞ 떨어졌으며, 깊이도 지하 35㎞였다. 아이티의 경우 진앙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와 가까웠고, 지진도 지표면에서 불과 13㎞ 깊이에서 발생해 지진의 에너지가 그대로 포르토프랭스를 강타했다.
양국 정부의 지진 대응에도 차이가 있었다. 르네 프레발 아이티 대통령의 경우 강진 발생 뒤 생사 여부가 궁금했을 정도로 사태 수습에 소극적인 모습으로 비난을 샀다. 반면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은 지진 발생 후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실시간에 가까운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김청중 기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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