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관심·지원 뒤따라야 ‘피겨 퀸’ 김연아(20·고려대)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쇼트프로그램(78.50점)과 프리스케이팅(150.06점) 모두 역대 최고점을 기록하며 총점 228.56점의 ‘세계 신기록’으로 ‘여제’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 10월 ‘올림픽 시즌’을 앞두고 시작된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두 차례나 정상을 밟은 김연아는 12월 절정의 기량으로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거머쥐어 금메달 후보 ‘0순위’로 꼽혔다. ‘피겨 퀸’은 올림픽에서 세계를 홀리는 ‘금빛 연기’를 펼친 뒤 ‘해냈다’는 생각에 처음 눈물을 흘렸고, 마침내 소원을 이뤘다. 김연아는 올림픽 제패로 세계선수권대회(2009년 3월), 그랑프리 파이널 3회(2006, 2007, 2009년), 4대륙 선수권대회(2009년)를 모두 석권한 그랜드슬램 달성의 첫 주인공이 됐다. 명실상부한 ‘피겨 여제’라 할 만하다.
20세기 초 스케이트가 처음 한국에 도입된 이후 늘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여제’의 즉위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한국 여자 피겨는 첫 출전한 1968년 그르노블 동계올림픽 이후 끊임없이 노크했음에도 그 수준은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피겨는 시청률이 가장 낮은 시간대에 방송되곤 했다. ‘천재’의 등장은 이 모든 것을 바꿔놨다. 웬만한 팬들은 이제 트리플 러츠, 트리플 악셀(공중 3회전 반) 등 어려운 피겨 동작의 전문용어와 기본점수도 상당히 이해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 피겨는 금메달을 맛봤지만 여전히 기반시설은 열악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피겨스케이팅만을 위한 전용링크가 없다는 점이다. 수도권 소재 실내 빙상장 10여곳은 아이스하키와 쇼트트랙, 피겨 선수들이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빙판 상태에 민감한 피겨 선수들에게 적합한 빙질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또 대부분의 빙상장은 수익을 위해 오전과 오후 시간대엔 일반인들을 위한 강습에 할애하고 선수들에겐 대부분 이른 새벽이나 저녁 늦은 시간에만 할당할 정도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김연아 역시 한국에서 훈련할 때 밤늦게 훈련하는 ‘올빼미 생활’을 견뎌야만 했다. ‘여제’의 탄생은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이 난 셈이다.
결국 선수들은 2∼3개월의 집중 훈련을 위해 해외전지훈련에 나서고, 매년 2000만원대에 이르는 비용 부담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여제’의 뒤를 이으려는 ‘연아 키즈’들이 자라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김연아 장학생’ 곽민정(군포 수리고)이 첫 출전한 이번 올림픽에서 13위를 차지한 것 또한 놀랄 만하다. 지난 1월 제64회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서 곽민정을 제치고 우승한 김해진(13)은 대표적인 ‘연아 키즈’로 꼽힌다. 초등생이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기는 2003년 김연아 이후 처음이다. 동갑내기 박소연도 만만치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의 ‘롤 모델’이 생겨나면서 어린 선수들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에 걸맞은 사회적 관심과 지원도 뒤따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박병헌 선임기자 bonanza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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