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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악몽같은 비극 언제까지"..KAIST 망연자실

입력 : 2011-04-11 13:24:30 수정 : 2011-04-11 13: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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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이어 교수도 자살..개혁정책 놓고 찬반논쟁도 "이 악몽이 언제까지 계속되나요.."

올해 들어 4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교수까지 유서를 남기고 숨지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정은 11일 큰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아침 일찍 기숙사에서 출발한 셔틀버스에서 내린 학생들은 대부분 경직된 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으며 대부분 헤드폰을 끼거나 땅만 내려다보며 "심정이 어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날부터 이틀동안 전면 휴강에 들어갔지만 학내에는 교수들은 물론 학생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예정된 사제간 대화에 참석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교수와 대학원생, 학부생들이 각각 별도로 모여 이번 사태의 원인을 분석하고 수습책을 모색하기 위해서 였다.

의과학과 대학원생 임모(24)씨는 "휴강이지만 이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대학원생 간담회가 오전 중에 있다고 해서 나왔다"면서 "후배들이 막다른 선택을 한데 대해 마음이 아프고 뭐라 말할 수 없이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복학생이라고 밝힌 화공과 박인혁(22)씨는 "오늘 교수님이 오랫동안 못 봤다고 상담하자고 하셔서 가고 있다"면서 "군복무 때문에 휴학을 했었는데 어떻게 지냈는지 그동안의 근황과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듣고 싶다고 하셨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고와 과학고로 나눠 일반계고 학생들은 고민이 많고 과학고 학생들은 수업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약"이라면서 "카이스트도 이 사회와 마찬가지인 만큼 다양한 이들이 공존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교수협의회는 이날 오전 9시 30분께부터 운영위원회를 열어 오후에 비상총회를 소집할 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으며 낮 12시에는 서남표 총장을 만나 최근 사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대책을 논의한다.

학부 총학생회도 일련의 사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기 위해 오전 10시께부터 회의를 열고 있다. 총학생회는 당초 10일에 최근 학생들의 잇단 자살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었으나 박모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해 이를 연기했었다.

학교 교직원들은 가슴에 근조리본을 달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 학내 간담회와 교수협의회 대책회의 등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교정에서 만난 학생들은 생명과학 연구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성과로 이름을 날렸던 박 교수가 하루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놓고 망연자실해 하는 분위기였다. 올해들어 4명의 학생이 숨진 데 이어 교수마저 자살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악몽같은 비극이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이냐"며 할 말을 잃고 있다.

바이오및뇌공학과 대학원생 오애경(26.여)씨는 "어제는 갑자기 교수님까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고 마음이 정말 착잡했다"면서 "요즘 모이기만 하면 학생들 자살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와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하는 토론을 한다"고 말했다.

오씨는 "팀별 프로젝트도 있지만 개인별 과제도 많아 학생들이 혼자 기숙사에 있는 시간이 많고 특히 소극적인 학생들은 문제가 있어도 주위에 도움을 청하기 쉽지 않다"면서 "진심으로 고민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이런 일은 없지 않았을텐데..마음이 아픈 후배들은 너무 늦기 전에 선배들에게 상담을 청해줬으면 좋겠다"고 울먹이기도 했다.

이날 만난 학생들은 후배나 동료의 죽음에 안타까워 하면서도 자살 원인에 대해서는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전자학과 4학년 권모(24)씨는 "나도 과학고를 나오기는 했지만 공부 양이 많고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어려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인데 외부에서 너무 차등적 등록금 문제로만 몰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친구들이랑 대화하면서 풀고 게임을 할 때도 있고 머리가 아프면 학교 밖으로 나가 함께 밥도 먹는다"면서 "힘든 부분은 일정부분 스스로 견뎌내야 한다는 총장의 생각에 동의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학생도 "총장의 개혁정책이나 징벌적 등록금에만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숨진 학생들 일부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만큼 자살방지센터나 심리상담, 복지시설 등의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한생은 "징벌적 등록금 등 서 총장의 일련의 개혁정책이 시행되기 전 학생들은 우려를 표해왔고 학사과정을 과도한 경쟁으로 몰아 붙이면 자살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분명히 경고했다"면서 "그럼에도 총장은 일관되게 무시해왔고 지금의 사태가 일어났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에 와서 3,4학년 전 학생들이 요구한 바를 따르겠다고 하는데 이게 책임이냐"면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고민조차 하지못한 총장에게 어떻게 지지를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학생은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차등등록금을 적용하되 수준을 조절 ▲재수강 학점 제한을 유지하되(B+), 재수강 개수제한 폐지 ▲엄격한 부.복수 전공 신청 및 유예기간 제공 ▲전과목 영어강의 폐지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KAIST 교정에는 따스한 햇살에 벚꽃과 개나리 등 봄꽃들이 만개했지만 구성원들의 얼굴에서는 좀처럼 봄기운을 찾아보기 힘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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