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병 살해장소… 셋 모여있었나 부대원 대응·가해자 실체도 의문 병사 4명의 목숨을 앗아간 해병대 총기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사건 전모가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군 수사당국은 가해자인 김모 상병이 자살하려고 터트린 수류탄에 심한 부상을 입어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사건 경위 등을 밝히는 데 속력을 내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증오하게 만들었나
유력한 군 소식통에 따르면 김 상병과 공범 혐의를 받고 있는 정모 이병은 고가 초소에 대한 수류탄 투척 등으로 부대를 아예 쑥대밭으로 만들려고 기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상병의 주장대로 병사들의 집단 따돌림이 있었다면 해당 병사에게만 앙갚음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부대 전체를 상대로 공격을 시도하게 만든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정 이병도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지만 고가초소를 파괴하는 데 의기투합을 한 만큼 두 사람 모두 부대원 전체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품어 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김 상병과 정 이병, 숨진 병사들이 서로 다른 분대 소속이었다는 점도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총기 난동 14분간 부대원은 뭐했나
살상극이 벌어진 해병대 소초에는 소초장을 포함해 모두 31명의 부대원이 있었다. 중간 수사발표에 따르면 김 상병은 11시42분부터 11시56분 수류탄 자폭을 시도할 때까지 14분간이나 12∼13발의 총을 쏘며 소란을 벌였다. 그런데 이 시간에 부대원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어떤 제지 노력을 했는지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해병대 관계자는 “사건이 벌어진 시간대는 야간 근무를 한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취침하는 시간이어서 갑작스러운 난동에 즉각 대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총격 소리가 부대 인근 주민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컸던 것을 감안하면 부대원들이 그 시간동안 계속 취침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경황이 없었던 부대원들의 초기 대응이 미숙해 화를 키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가
군 수사당국이 풀어야 할 또 한 가지 숙제는 누가 이번 참극을 촉발했는가다. 김 상병은 메모에서 “기수열외를 참을 수 없었다”며 자신이 부대의 집단따돌림 피해자임을 암시했다. 특히 살해된 권승혁 일병에게는 ‘죽여버리고 싶은데’라는 증오심까지 내비쳤다. 또한 공모자인 정 이병도 스스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하지만 숨진 권승혁 일병 유가족은 “생전에 권 일병이 김 상병으로부터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았고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안석호 기자 sok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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