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서 찾은 대구미술관, 작품 주변 둘러싼 펜스에 당황… 설명문엔 ‘참여 통한 의미 완성’
이해 못하는 사람들 무시하고 순번을 매겨 끊어 내려 한다면 미술은 혼자 남게 될지도 몰라
한국에 우후죽순으로 미술관이 들어섰다는 소식을 바다 건너 이탈리아에서 듣고 한국에 들어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터였다. 기회가 닿자마자 서둘러 흥미를 끄는 미술관 목록을 만들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대구미술관이었다. 대구미술관은 건립 논의 후 개관까지 14년이 걸렸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1층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공간, 어미홀이다. ‘품어내고 생성하는 장소, 자연의 모체를 뜻하며 어미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높이 18m, 폭 15m, 길이 42m에 달하는 어미홀의 압도적인 크기와 그 안을 비운 듯 채우고 있는 이강소의 작품은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크기의 나무가 성큼성큼 잘린 듯 조각되어 있었고 어미홀 안에 자유롭게 배치된 작품과 그 사이의 공간이 만들어내는 ‘여백’이 시선을 뗄 수 없게 했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홀을 받치고 있는 기둥 가장자리로 돌아보았더니 설치 전경을 바라보는 각도가 바뀌면서 거대한 조각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주었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작품을 관찰하고 싶어 걸음의 방향을 바꿔 홀 안쪽으로 다가가던 중 뭔가 무릎 아래 정강이를 툭, 건드렸다. 어미홀을 둘러싸고 있는 기둥 사이사이가 무릎보다 조금 낮은 펜스로 빼곡하게 메워져 있었던 거다.
‘예술가는 여기 있다’(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회고전 2010, 사진, MOMA미술관). 바닥에 흰 줄을 그어 관람석을 구분해 놓았다. |
“아, 네. 아이들이 작품 사이에서 장난을 치고 소란을 피워서….”
얼른 들어가서 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에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낮은 회색 펜스 너머로 발을 한발 들여놓으며 물었다. “우린 들어가도 되는 거죠?” 그 말에는 “당연히 성인인 우리는…” 뜻이 담겨 있었다. 아니. 안 된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 당황스러웠다.
지금껏 많은 미술관과 전시장을 다녀보았지만 공사중이 아니고서야 홀 전체를 막아 놓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함께 미술관을 찾은 큐레이터 S씨도 난감해했다. 멀리서 이 작품을 보려고 왔다고 사정 얘기를 해볼까, 담당 큐레이터를 찾아 작품 의도와는 상반된 전시방향 설정에 대해 설명을 부탁해 볼까,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한 치의 틈도 없이 빼곡히 들어선 펜스가 만들어내는 배타적인 이미지에 질려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아쉬움에 등을 돌려 어미홀에 연결된 다른 전시장으로 향하며 전시 리플렛을 다시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虛(허) emptiness 11-Ⅰ-1’(2011년, 이강소, 사진, 대구미술관). 사진에는 펜스가 보이지 않는다. |
대구미술관을 보고 온 며칠 동안은 관람객의 접근을 막은 펜스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실례를 무릅쓰고 작가에게 직접 연락을 했다. 바쁜 와중에도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준 작가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오픈식 이후로는 전시장에 들를 기회가 없어 관람객의 홀 입장이 금지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죽음의 승리’(14세기 중반, 작가 미상, 20세기). 시칠리아섬의 팔레르모 시는 복원을 위해 프레스코화를 벽에서 뜯어내 운반하기 용이한 4조각으로 나뉘어 로마로 보냈고, 자른 자국에 훼손이 더욱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
‘음악전람회―전자 텔레비전’(전시를 위해 준비된 피아노, 1963년, 백남준). |
미술관을 관람하거나 문화활동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은 보는 이의 관심사와 기호, 즐거움에 대한 기대가 작품이 보여지는 방식, 지켜야 할 규칙과 같은 요소와 서로 조화를 이루거나 상반되게 대립하는 복잡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일반인뿐만 아니라 미술애호가, 미술계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종종 전시장에 걸려 있는 작품은 관심과 호기심, 즐거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미학적 기대에 어긋나는 불쾌한 경험을 주는 물건이 되기도 한다.
미술관을 찾는 사람이 특정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인으로 확대되면서 작품을 공격하고 훼손하는 사건도 더욱 빈번하게 터지고 있다지만 작품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정신이상자부터 호기심이나 분노에 찬 관람객, 작품의 본래 제작의도와 상반된 전시방식에 동의하지 못한 예술인 등 다양하다. 정치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흩뿌려 관심을 끌려 하기도 하고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변형하기도 한다. 그런데 파괴나 보존의 여러 시도들이 늘 의도한 결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Largen4, 조토 이전과 이후’(1982∼85, 베리 익스 볼, 은과 팔라듐, 44x44cm) |
전문가들이 그어주는 가이드라인을 묵묵히 따라가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를 자처하던 이들이 당시 최고의 기술과 지식으로 복원했지만 현재에 훼손이 진행되는 작품은 한두 점이 아니다.
베리 익스 볼의 ‘Largen 연작’은 처음엔 은색으로 비슷해 보이는 팔라듐과 은판을 배열해 만든 작품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은이 변색해 차이가 드러나게 만들어졌지만, 얼마 전 한 컬렉터의 상속자가 작가에게 알리지 않고 깨끗하게 작품을 원상태로 복원하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바렛 뉴먼의 작품은 관람객과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플라스틱 봉을 지지대에 받쳐 임시 펜스를 쳤지만 뉴먼의 천문학적인 작품가에 공포를 느낀다고 말한 조셉 클리어가 작품을 공격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었을 뿐이다. (관련글. 11회. 공격받는 예술)
멀리 떼어 놓을수록, 막을수록, 퍼져 나가는 법. 후세에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헤로스트라토스는 아르테미스 신전에 불을 질렀다. 기원전 356년 7월의 일이다. 에페소스시 당국은 그의 행위를 모방하는 자들을 막기 위해 헤로스트라토스를 처형하고 그의 이름과 신상정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라고 명했다. 하지만 그들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0년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 그의 일화는 널리 알려졌고 그의 이름은 ‘명성을 얻기 위해 집착하고 안달하다’는 뜻의 단어가 되었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 벽의 낙서. 한국어로 된 낙서도 보인다(사진, flickr 마크 브래넌). |
대구미술관은 10월까지는 이강소의 ‘虛(허) emptiness 11-Ⅰ-1’가 있는 어미홀을 막아 놓을 방침이라고 한다. 내년 4월까지 전시가 진행이 되니 시민들이 설치작품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막히는 것은 아니다.
미술은 사람들에게 살갑게 다가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어려운 얘기를 들려주고 싶으면 듣는 사람이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참을성이 필요하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르치려 들고 순번을 매겨 차례대로 끊어내다 보면 ‘어려운’ 미술은 결국 혼자 남게 될지도 모른다. 미술전시의 연평균 관람 횟수가 0.2회를 맴도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작가와 작품이 관람객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작품을 올가미에서 풀어주시라.
대구 출신의 작가 이강소는 “미술관은 일반 시민이나 관객이나 작가들의 ‘모험의 장’이 되고, 일반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해방구를 공유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며 대구미술관에 거는 기대를 내비친 바 있다. 이번 전시의 도록에 나온 큐레이터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조각·미술설치가(밀라노) hojin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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