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은행에 76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쌓아 놓고 있지만 첨단 기술업계의 영원한 승자는 없다. 잡스가 지난 14년 동안 보여준 애플의 디지털 혁명은 지속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애플은 현재 전방위 공격을 받고 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시스템으로 아이폰을 퇴출시키겠다고 달려들고 있다. 네트플릭스(Netflix)는 아이튠즈를 몰아내고, 세계의 안방을 점령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페이스북은 인터넷의 윈도를 꿈꾼다. 아마존은 아이패드를 잡으려고 태블릿 PC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힘든 전쟁을 수행해야 할 애플의 최고 사령관은 잡스 밑에서 ‘넘버 2’ 자리를 지켰던 팀 쿡이다. 그는 지난 8월 말 애플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쿡은 지난 4일 신제품 발표회의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당초 기대와는 달리 아이폰5를 출시하지 못하고 아이폰4S를 선보이는 데 그쳤다. 애플의 주가는 5%나 빠지고, 소비자들의 분노로 애플의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잡스가 떠난 빈 자리는 그렇게 컸으며 쿡 CEO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열쇠는 소비자의 마음이다. 잡스 없는 애플은 소비자의 마음을 붙잡아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애플만큼 잡스와 회사 브랜드가 동전의 양면처럼 여겨졌던 기업의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애플은 그동안 잡스가 생각하고, 결정하는 대로 움직였다. 병마에 시달린 잡스는 최근 5년 동안 쿡을 데리고 다니며 경영 수업을 시켰다. 쿡은 누구보다 잡스의 경영 스타일을 잘 알고 있으나 잡스와는 판이한 특성을 가진 인물이다.
쿡이 잡스와는 달리 어떤 마술로 관객을 사로잡을지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아이폰4S가 14일 출시되면 각국의 애플 매장 앞에는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긴 행렬이 이어질 수 있을까. 행렬이 이어진다 해도 그 행렬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예단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쿡은 올해 50세로 1998년 애플에 입사했다. 엔지니어 출신의 쿡은 그동안 애플의 판매와 운영을 책임지면서 잡스를 보좌했다. 쿡은 2004년과 2009년 잡스가 췌장암 치료를 위해 병가를 냈을 때에도 임시 CEO를 맡았었다.
애플사 내부에서는 쿡을 대신할 인물이 없기에 쿡을 중심으로 잡스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미국 언론은 전한다. 쿡은 그동안 스포트라이트를 피하는 조용한 행보를 유지했다. 애플의 새 얼굴로 대중 앞에 나서야 할 쿡의 양 어깨에는 애플의 운명이 짊어지어져 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