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 쓰며 이설 지차체 비판도
LG화학 등 '조건' 문제제기
"허가취지 왜곡 적극 다퉜어야" 국내 최대 석유화학 특화단지인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불법·편법 관로를 놓고 벌어진 ‘요지경’ 실태에 대해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평했다. 지자체의 관로 이설 요청을 아예 거부하는 GS칼텍스 등 대기업의 행태와 LG화학 등 4개사의 관로를 옮겨 주느라 98억원의 혈세를 탕진한 지자체의 이해하기 힘든 행정조치에 대한 비판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혹도 꼬리를 물고 있다.
〈세계일보 12월27일자 참고〉
취재팀이 전국 277개 시·군·구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매설물의 이설비 부담 주체 등을 질의한 결과, 유보 입장을 밝힌 몇 곳을 제외하곤 대부분 ‘피허가자(수허가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피허가자는 관로를 묻은 기업이다.
여수처럼 원료이송 관로가 많은 울산 남구청의 관계자는 “도로공사로 인해 옮길 이유가 생기면 당연히 자기 부담으로 이설해야 한다”면서 “이는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라고 말했다. 인천시 관계자도 “관리청 도로이고 도로 점용은 한시적인 허가인데 관리청 부담으로 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LG화학 등이 관리청 범위와 허가조건 문구를 문제삼아 보상을 요구한 것에 대해 다른 지자체 관계자들은 “허가를 내준 취지가 왜곡됐다”는 입장을 보였다. LG화학 등은 “허가를 내준 관청(여수시)과 도로를 내는 시행자(전남도)가 다를 뿐만 아니라 전남도의 ‘신설도로 개설 행위’는 ‘도로 유지·관리상 필요한 때’가 아니라서 보상해 줘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경기도 가평군 관계자는 “도로법 제23조, 건설산업기본법 제2조를 감안할 때 ‘공사’란 토목공사뿐만 아니라 설비·구조물의 설치, 유지, 보수를 모두 일컫는다”며 “매설자가 이설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충남 부여군 관계자도 “‘도로 유지·관리상 필요한 때’라는 문구는 이설사유 발생 시 비용을 매설자에게 부담 지우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허가 시 매설자 부담 명문화
전국 대부분 지자체들은 도로점용 허가를 내줄 때 허가조건으로 필요 시 매설자 부담으로 시설물을 옮겨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부 업무매뉴얼의 허가조건 표준안도 ‘국가계획 또는 공익상 필요해 점용물을 이전할 경우 피허가자 부담으로 이전해야 하며∼’라고 문구를 명시하고 있다.
경기 구리시와 화성시, 충북 단양군, 충남 부여군, 강원 양양군도 모두 이 같은 문구를 쓴다고 밝혀 왔다. 안양시 만안구는 ‘도로의 확장 또는 개설로 인해’라는 표현을 쓰고, 경남 밀양시는 ‘공익 목적상’, 합천군은 ‘관리청의 계획에 따라’라는 문구를 써서 문제의 소지를 차단하고 있었다.
경북 경산시 관계자는 “사업 시행자와 허가 관청이 달라서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는 것은 말장난 같다”며 “행정소송을 통해 적극적으로 다퉜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원치 않은 수도권 지자체 관계자는 “기업들의 비용 처리를 정부가 대신 해준 꼴 아니냐”며 “담당 공무원이 임의로 판단한 것 같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조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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