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의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인 2010년 12월4일 김관진 예비역 육군 대장은 43대 국방부장관으로 취임했다. 취임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최전방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대북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북한이 도발하면 묻지 말고 쏘라. 선조치 후보고하라. 공격 원점을 타격하라”고 했다. 국방장관이 야전 지휘관의 역할을 대신한 것인데 과거에는 없었던 일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군의 대응 방식은 이로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전략이다. 이후 북한은 때리고, 남한은 눈치보던 남북 관계는 달라졌다. 안보상황도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에게 “혹시 쇼맨십이 발휘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 가미됐을 수 있겠다”며 웃어 넘긴다.
북한의 도발을 수습하고 물러날 ‘계투 요원’으로 여겨졌던 그는 국민의 지지 속에 현 정부의 순장조가 되고 있다. 그의 인기는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트위터(twitter.com/kwanjinkim)의 팔로워가 1일 현재 1만6344명을 넘어선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강한 국군’을 만들기 위해 그가 추진한 국방개혁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개별 언론과 인터뷰하지 않던 김 장관을 지난달 27일 국방부 국방회관에서 만났다. 근황을 묻자 “북한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각진 얼굴에는 여전히 강직한 군인의 풍모가 배어나고 있었다.
―리영호 총참모장이 숙청되면서 북한 군부에 재편 바람이 부는 것 같다. 북한 권력지형은 어떻게 변하리라 보나.
“현재 첩보수준의 내용과 미래 개연성을 감안하면 어떤 것도 단정짓기 어렵다. 아직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지 7개월밖에 되지 않은 만큼 계속 관찰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미래는 어떻게 보는가.
“드러난 것만으로는 그 향배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북한은 경제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퍼스트레이디를 공개하며 파격적인 양태를 보이는 것도 결국 그걸 염두에 두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방식이 성공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북한은 당분간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체제를 유지하는 것과 경제개발에 성공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갑자기 나타난 리설주를 두고 이런저런 분석이 많다. 이미지 정치를 한다는 시각도 있는데.
“우리 쪽에서 보면 안보약화 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도 있어 걱정이다. 북한도 아마 그런 점을 생각했을 것이다. 과거 폐쇄적, 독재주의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 무엇이 좋을지 생각했을 것이다.”
―북한이 또 도발할 것으로 보나.
“최근 여러 정황을 고려해 북한이 대남도발을 하는 게 유리하지 않다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북한의 과거 행태를 보면 그래도 도발했다. 북한이 노리는 것은 우리에게 주는 충격과 혼란이다. 그래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군대는 절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김관진 국방장관이 지난달 27일 본지와의 단독인터뷰에서 최근 북한 내부 체제변화와 김정은 부부의 파격 행보와 관련, “북한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남북관계가 좋아진다고 하는 건 조금 섣부른 판단”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
“근본적으로 북한이 우리에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한다.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서 당연한 순서 아닌가. 남북관계 파탄은 북한에 원인이 있다. 지금 당장 남북관계가 호전된다고 단정짓긴 어렵다. 북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남북관계가 좋아진다고 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본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나.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중국이다. 앞으로 그 영향력을 완전히 행사하느냐, 제한적으로 행사하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방중설도 나오는데.
“시기를 보고 있을 것이다. 북한도 정무적 판단을 한다. 당장은 중국도 내부 지도부 교체가 있고, 북한 역시 전환기를 맞고 있어 어렵겠지만 언젠가는 방중할 것이라고 본다.”
―동북아에서 생존하기 위한 우리의 안보전략은.
“중국의 부상에 따라 미·중 간 협력과 견제 구도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로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미동맹 관계를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 물론 주변국들과의 협력적 관계 유지도 중요하다. 특히 중국과 군사협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점진적으로 한·중 군사협력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한·일 정보보호협정 문제로 한·미·일 삼각동맹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한·미·일 삼각동맹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바람직한 모델이 아니다. 동북아 세력균형에 분란이 생길 수 있는데 일부러 끄집어내 추진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과 핵실험으로 인한 도발 위협이 증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미·일의 대북 정책공조와 협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초국가적, 비군사적 위협이 증가하는 국제적 안보환경을 고려할 때 인도주의적 지원과 재난구호 중심의 한·미·일 협력은 필요하다고 본다.”
―한미연합사 폐지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불안감이 상존하는데.
“한미연합사령부 존속 문제는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언급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다. 현재 전작권 전환 준비는 한·미가 합의한 ‘전략동맹 2015’에 따라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한국군의 핵심 능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전작권이 전환되더라도 한·미동맹 체제는 확고히 지속될 것이며, 우리가 주도하게 될 신연합방위 체제도 전시와 평시 가릴 것 없이 차질이 없도록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 제임스 서먼 한미연합사령관이 미 국방부와 합참에 아파치 공격헬기의 한국 재배치를 요청했다.
“미국서 아직 확실한 의사 결정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미 국방부에서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 같은데 구체적인 추진 계획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 어디로, 어떻게 된다는 것이 나와야 완전히 끝난 것인데…. 아직 거기까진 아니지만 큰 방침은 정해졌다. 원래 주한미군에 3개 아파치 대대가 있었다가 아프간 등지로 2개 대대가 빠져 나갔다. 당연히 다시 와야 한다. 미국의 신아시아·태평양 전략을 고려해 진행될 것으로 본다.”
―한·미 미사일 사거리 협정 개정 추진 상황은.
“현재 상태로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올해 안에 개선되도록 할 것이다. 내 임기 내에 매듭지을 생각이다. 실무협상 과정에서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아직 협상이 진행 중인 상태라 중간에 단정적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우리는 분명 우리대로 타당한 논리가 있다. 미국쪽 인사들도 우리 논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이것은 동맹의 능력을 키워주는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미사일 사거리는 어느 정도로 늘어나나.
“분명한 것은 현재보다 나아진다는 것이다. 만족하느냐, 아니냐 하는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미국 내 분위기도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많이 확산되고 있다.”
―향후 한국군의 핵무장 가능성은.
“일본이 최근 원자력 기본법을 개정했는데 이를 핵무장의 빗장을 풀었다고 단정할 상황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물론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만으로도 동북아 안보에는 불안정 요인이 될 수 있다. 일본 스스로도 국제사회와 동북아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비핵화 원칙을 고수하려는 가시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핵개발로 인한 위협에 대해 자체적 핵무장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우리 정부가 천명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준수하면서 국제사회와 공조해 북핵 문제를 푸는 게 우선이다. 북한의 핵개발이 한반도에서 가장 주목할 현실적 위협인 만큼 한·미동맹에 기초한 핵확장억제책은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한·일 정보보호협정은 왜 필요한가.
“우리는 안보적 차원에서 접근한다. 당장 북한의 일반정보와 군사정보가 필요하다. 일부에선 일본의 정보 수준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만 어느 나라든지 정보의 가치에 대해 판단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정보자산만 놓고 보더라도 일본이 우리보다 몇 배 많다. 우리는 휴민트(인간정보)가 강하다고 하지만 일본은 요리사(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를 북한에 보냈지 않은가. 서울 출신 요리사라면 가능했겠는가.”
―한·일 정보보호협정을 재추진할 의향은 있는가.
“2011년 1월 일본 방위상을 만나 실무적 논의를 하자고 했다. 1989년과 2007년에도 우리가 먼저 제의했다. 이것은 북한에 대한 모든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아니다. 2급 비밀이라고 해서 전시작전계획이라든지 하는 중요 정보를 서로 주고받겠는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수준의 정보를 교류하게 된다. 정보는 다양한 소스를 가져야 가치가 있다. 하찮은 정보도 모이면 큰 역할을 하는 정보가 될 수 있다. 군사협정은 군사동맹과 다르다. 한·일 간에 뿌리깊은 역사적 앙금을 감안해 국방부도 1년6개월 동안 시간을 끌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앞으로 국민과 국회에 이해와 협조를 구하며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
―한·일 정보보호협정 논란은 정무적 판단을 잘못해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장관이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하는 위치라는 것은 인정한다. 문제는 국가안보를 책임진다는 것은 정권에 상관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정권이든 국가안보는 동일한 개념으로 동일한 위치에 서야 한다. ‘정권과 같이 간다’, 뭐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장관 임명받을 때도, 지금도 그렇다. 난국을 빨리 수습해야 된다. 군을 제대로 해놔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40년간 군복을 입었던 사람으로 당연한 것 아니겠나.”
김관진 국방장관은 취임 이후 북 도발에 ‘선조치 후보고’를 강조하며 전선을 누볐다. 김 장관이 지난달 31일 중부전선의 한 육군 GOP(전방초소)를 방문해 과학화 감시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국방일보 제공 |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국방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환영한다. 국회와 정부, 안보전문가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국회가 중심이 돼 처리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국회에서 논의해 의결하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국민적 공감이 없으면 추진하기 힘들다. 19대 국회에는 상부지휘구조 개편 중 가장 핵심적인 국군조직법만 제출할 계획이다. 국방개혁안은 우리 군의 미래 청사진으로 다기능 고효율의 선진국방 구현을 위해 2030년까지의 비전을 담은 장기 계획이다.”
―차기전투기(FX) 도입사업과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민감한 이야기도 아니다. FX 사업의 목적은 노후기종 교체에 따른 새로운 소요다. 너무 늦어져서 전력 공백이 생기면 안 된다. 그렇다고 너무 빨리 해서 확실하게 평가와 검증을 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를 시행하는 주체는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이다. 우리는 정권에 관계없이 이 일을 추진해야 한다. 만일 지금 중단하면 엄청난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 어떻게든 미흡한 점이 없도록 철저히 평가하고 검증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바라는 것이다. 절차대로 진행하고, 평가와 검증이 미흡하면 연기시킬 수밖에 없다.”
―도시 주변의 공군기지 소음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수원, 대구, 광주와 같은 대도시에 있는 공군기지의 소음으로 주민들이 겪는 피해가 심각하다는 점을 감안해 정부는 기지 이전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공군기지 이전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매년 1200억원가량의 소음피해 보상금이 나가기 때문이다. 10년이면 비행장 하나 짓는 값이다. 비행장이 생기고 나서 주민들이 왔다고 하지만 그들은 모두 우리 국민이다. 국민이 불편해하니까 우리가 이전해 드려야 하지 않겠나. 성공적인 기지 이전을 위해서는 이전 후보지 선정의 어려움과 지역간 갈등 가능성, 국가재정부담과 같은 문제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19대 국회 개원 이후 의원입법이 제출된 상황이라 향후 국회와 지자체와 함께 적극적으로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공군기지 이전과 국방개혁안을 맞바꿀 가능성은 없나.
“두 가지 사안은 거래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18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비슷한 시기에 제출되다 보니 불필요한 오해가 빚어졌다.”
딱딱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서당 훈장 같은 엄격한 이미지로 다가서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하자 “난 고집불통이 아니다. 겉보기와는 다르다”며 정색을 한다. “알고 보면 유연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는 딸 셋을 둔 아버지다.
김 장관은 유연한 사고를 가졌다는 평도 듣는다. 결재서류를 한아름 안고 밤을 새우지는 않는다. 휴일에 공관에서 업무와 씨름하지도 않는다. 참모들에게 권한을 배분해 군 조직이 합리적으로 움직이도록 지휘한다. 내부에서 잡음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라며 앞으로의 생각을 물었다.
“본래 장관은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연연하지 않는다. 국방정책의 특성상 장관 임기 안에 결과가 나오거나 끝나는 게 많지 않다. 다음 사람에게 어떻게 디딤돌을 놓아주느냐가 중요하다. 현안을 풀기 위해 터를 잘 잡아 놓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담=박병진 외교안보부장, 정리=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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