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전기끊어 폐사시켜라” 육가공업체인 ㈜하림은 양계농가에게 돌아가야 할 가축재해보험금을 교묘한 방법으로 가로채고 있다. 수익자를 하림으로 지정, 농가들이 보험금을 받을 수 없게 차단하면서 변상책임이 없는 농가에는 사료값과 병아리값을 공제하고 남은 금액만 사육비 명목으로 주고 있는 것이다. 양계농가를 위한 가축재해보험이 결국 육가공업체의 배만 채워주고 있는 셈이다. 가축재해보험을 담당하는 축협은 보험 가입 때 가입자 동의 여부도 묻지 않은 채 기업을 수익자로 한 보험계약을 남발, 농가 피해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체 배만 불리는 가축재해보험
축산사업자의 닭을 키우는 양계농가는 고의로 닭을 폐사시키지 않는 한 변상 책임을 지지 않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수익자를 자사로 지정해 보험금을 받은 하림은 병아리값과 사료값을 공제한 후 나머지를 농가에게 지급하고 있다. 각종 재해로 농가의 잘못이 없는데도 병아리값과 사료값을 보험금에서 원천징수하고 있다. 사실상 농가에게 변상책임을 물리고 있는 셈이다.
전북의 한 농가는 지난해 8월 축사가 물에 잠기면서 닭 3만수가 폐사했다. 이때 나온 보험금은 8200만원. 하림은 병아리값과 사료값으로 약 5000만원을 떼고 나머지만 농가에 줬다. 하지만 이 농가는 지난 1년간 2억원을 들여 축사를 새로 지어야 했다.
◆재해로 닭 폐사해도 손해 안 봐
올여름 제15호 태풍 볼라벤이 호남을 강타하면서 하림 계열화 농가들도 큰 피해를 보았다. 강한 비바람에 양계 축사는 무너지고 찢겨 나갔다.
강풍으로 축사 천장 일부가 날아가버린 전북의 한 양계농가는 다급하게 하림의 사육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이 농가는 피해 상황을 말하고 나머지 닭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는지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차라리 차단기를 내려버리라”는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축사에 들어가는 전기 전원을 끊으라는 말이었다. 전원을 끊으면 환풍기와 사료공급 시설의 가동이 중단돼 살아있는 닭도 폐사하게 되지만 사육 담당자는 태연하게 전원을 끊으라고 한 것. 그는 자식처럼 키운 닭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닭이 폐사해도 하림이 손해 보는 일은 거의 없다. 하림 관계자는 “태풍에 비를 맞은 병아리 가운데 상당수가 수일 내에 폐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차라리 태풍 때 폐사하면 보험금이라도 받을 수 있어 더 좋지 않으냐”고 했다.
◆축협은 불법 재해보험 가입 묵인
하림 계열화 농가의 가축재해보험 가입 과정을 보면 거의 횡포에 가깝다. 하림이 2010년 8월 처음으로 농가 명의로 보험을 가입할 때는 사전에 농가 동의조차 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농가들이 보험금 수익자를 문제 삼아 보험 가입을 반대하자 하림은 사육 재계약 해지라는 초강수의 카드를 꺼냈다. 농가들은 자칫 보험가입을 거부했다가는 닭을 키우지 못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울며 겨자 먹기로 수익자를 하림으로 한다는 위임장을 써줬다.
특히 보험금을 받은 하림은 농가에게 보험금 수령액과 공제액 등 기본적인 사실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보험을 판매한 축협도 기본적인 가입절차를 지키지 않아 부실 보험을 키우고 있다. 축협은 보험가입을 받을 때 가입자 본인 동의 여부 확인 및 현지 실사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하지만 축협은 하림이 준 서류만으로 보험가입 심사를 대신했다.
익산=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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