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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예산 100조 시대 누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① 아랫돌 빼 윗돌 괴기식 인력수급

입력 : 2013-03-26 17:29:05 수정 : 2013-03-26 17: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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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공무원 충원 시늉만
산더미 서류에 ‘파김치’
#1 인천시 A군의 한 면사무소에는 사회복지직 공무원 2명이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무상보육료 신청부터 기초생활수급자와 노인, 여성, 아동, 장애인 등 200여가지의 복지업무는 단 한 명이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다른 7급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복지업무와 관계없는 주민등록등본 발급 등 일반 행정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옹진군 사회복지직 공무원 A씨는 “주민센터 직원들의 업무분장은 읍·면·동장이 결정한다. 늘어나는 복지업무 부담을 줄이겠다며 새로 공무원을 뽑아도 일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2 10개 동주민센터에 사회복지직 공무원을 한 명씩만 뒀던 경기도 B시는 최근 6명의 복지직 공무원을 더 채용했다. 그런데도 복지담당 공무원들은 여전히 매일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쉬지 못한다. 기존 복지업무를 담당하던 6명의 행정직 중 5명을 빼내 다른 업무를 맡겨서다. 복지담당 인력이 늘었지만 B시 동주민센터에서 복지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 수는 그대로 18명이다. 

복지예산 100조원시대를 맞아 복지정책의 가짓수는 늘고 있지만 정작 일할 복지담당 공무원 숫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인력부족현상은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을 죽음으로 내몬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수급대상자를 직접 만나는 읍·면·동주민센터 10곳 중 8곳은 여전히 1∼2명이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조직이 늘어난 만큼 정원도 순증되어야 하지만 일선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사회복지직 공무원 1명이 늘어나면 복지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직 1명을 다른 부서로 배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식의 인력수급 때문에 사회복지직 공무원 증가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일선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은 “정부가 복지분야 인력충원을 했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행정직 공무원을 지원해준 결과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보건복지부 등에서도 파악하고 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복지직과 행정직을 포함한 전체 복지담당 공무원은 2011년 2만3000여명에서 지난해 2만5000여명으로 늘어난 반면, 1만2900여명이던 행정직 복지담당은 1만2700여명으로 줄었다.

이용규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 전달체계혁신팀장은 “인사권을 가진 자치단체장 등이 행정직 직원과 복지직 직원의 업무를 단순 수치로 비교해 인력을 운용하면서 인력 충원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무상보육 등 복지정책이 확대되면서 과도하게 늘어난 업무도 사회복지직 공무원에게는 큰 부담이다. 기존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 장애인, 여성, 아동 업무에 무상보육, 교육부의 교육급여신청 업무까지 관리하고 있다. 복지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복지담당 공무원이 맡고 있는 실정이다.

급식비 미납자·단전단수 가구·도시가스 중단자 등에 대한 현황조사,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여행바우처 사업 등 13개 부처에서 쏟아낸 200여개 복지업무를 1∼2명의 읍·면·동 사회복지담당이 처리하고 있다. 과도한 업무부담 때문에 공무원사회에서 복지업무는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로 분류된다.

지난 19일 목숨을 끊은 울산 중구의 사회복지직 9급 공무원 안모(36)씨는 기초노령연금 1314명, 장애인복지 37가구, 일반장애인 1038명, 장애연금 84가구, 한부모가정 64가구, 양육수당 447건, 일반보육료 517가구, 유아학비보조 385가구를 혼자서 감당했다. 

울산시 중구 한 동주민센터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19일 `업무과다`를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틀 뒤인 21일 그가 일했던 민원창구 자리에는 꽃한다발이 놓여있다.
울산=연합뉴스
같은 중구 디자인건축과에서 근무하는 행정직 9급 김모(31)씨는 옥외광고물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현수막 등 옥외광고물의 신고접수를 받고, 불법광고물을 단속·철거하는 게 주된 업무다. 김씨는 하루 평균 30∼60건의 옥외광고물 신청업무를 처리하지만 신청이 없는 날도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하는 광고물 단속은 직원 5명이 함께 처리하고 있어 부담이 적다.

안씨가 일주일에 30시간 이상을 추가 근무한 반면 김씨는 10시간에 그칠 정도로 업무강도가 확연하게 차이난다. 이는 읍·면·동주민센터 복지담당 공무원들에게 공통된 상황이다.

한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 홈페이지에 “무상보육 신청 때문에 숨도 못 쉬고 있는 상황에서 아동인지 바우처 등 모든 바우처 신청은 물론 교과부 교육급여 신청, 국토부의 매입임대 업무까지 밀려오고 있다”며 “매일 오후 10시 넘어 퇴근하고 쌓여 있는 서류를 보면 죽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또 다른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복지부가 더 이상 업무를 만들지 말고 타부처 업무를 가져오지도 말았으면 한다”고 하소연했다.

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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