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제국 왕의 여름 별궁이었던 마추픽추. 까마득한 절벽을 끼고 해발 2400m 산정에 자리한 이 거대한 석조물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마추픽추는 ‘늙은 산’이라는 뜻이고, 앞에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젊은 산’이라는 뜻을 지닌 와이나픽추다. |
나는 지금 마추픽추(3000m)의 산등성이에 서 있고, 그 앞에는 와이나픽추(2660m)가 마주 보고 있는데, 유적은 그 사이 봉우리 정상(2400m)에 자리하고 있다. 유적 주변은 까마득한 천길 낭떠러지다. 그 아래로는 물돌이지형으로, 우루밤바강이 휘감아 돌아나간다.
마추픽추가 세계적인 유적지로 명성을 떨치는 데는 이같이 여러 극적인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 사람이 오르기도 힘든 이 천인단애 위에 어떻게 전체 면적이 5㎢에 달하는 거대한 석조 건축물을 세웠을까. 하나에 수십t이나 되는 돌들을 어디서 어떻게 운반해 왔고, 또 어떻게 그 사이에 면도날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다듬어 쌓았을까.
마추픽추를 얘기하기에 앞서 먼저 두 가지 짚고 갈 게 있다. 잉카제국은 서양 고고학자들이 만든 말이다. 잉카는 당시 그들의 언어였던 케추아(Quechua)어로 제국의 ‘왕’을 뜻한다. 그들의 원래 국명은 ‘타완틴수유(Tawantinsuyu)’였다. 그리고 잉카제국은 고대문명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13세기 초에 시작해 스페인 침공으로 멸망하는 1533년까지 존재했다. 우리의 고려 말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기간에 이어진 문명이다. 그러나 이 잉카문명에는 여러 신비한 이미지가 보태져 수천년 전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잉카에는 제대로 된 문자가 없었다. 줄의 매듭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결승문자’가 있었지만 아직도 해독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추픽추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가득하고, 내력조차 확실치 않다. 피난용 도시나 비밀 요새라는 설들이 난무했지만, 현재는 잉카제국의 기틀을 다진 왕 파차쿠티(Pachacuti 1438∼1472)를 위한 여름별궁이라는 게 정설이다. 유적을 살펴보면 마추픽추에는 170여가구에 1000여명이 거주했고, 800m 떨어진 곳에서 식수를 끌어왔다.
잉카제국의 멸망으로 마추픽추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간 과정도 극적인 장면의 연속이다. 당시 잉카는 지금의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페루, 칠레 북부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이었다. 인구도 수백만명에 달했고, 안데스산맥부터 태평양 연안까지 총연장 4000㎞에 달하는 사통팔달의 ‘잉카 트레일’(산길)을 연결할 정도로 잘 정비된 사회였다.
그러나 프란시스코 피사로(1476∼1541)가 이끄는 단 168명의 스페인 군대에 의해 하루아침에 멸망했다. 신대륙이 발견되며 유럽에서 건너온 천연두에 의해 남미 대륙 전체가 이미 초토화됐고, 기병을 앞세우고 철제 무기와 대포로 무장한 스페인 군대에 청동무기를 쓰던 잉카 병사들은 순식간에 도륙당했다. 아타우알파(Atahualpa) 왕이 붙잡혀 참수당하고 제국의 수도 쿠스코가 함락당하자, 잉카인들도 당시의 문명도시 마추픽추를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마추픽추는 잊혀졌다. 400년의 세월이 흐른 1911년에서야 미국 예일대의 고고학자인 하이럼 빙엄에 의해 반쯤 폐허가 된 마추픽추가 발견됐다.
쿠스코와 마추픽추를 잇는 기차는 안데스 협곡을 지나는 우루밤바강을 따라가며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
마추픽추 하늘에는 유난히 콘도르가 많다. 어디선가 구슬픈 가락의 ‘엘 콘도르 파사르’(콘도르는 날아가고)라는 음악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 곡은 원래 18세기 일어난 농민 봉기를 이끈 투팍 아마루(Thupaq Amaru: 본명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 Jose Gabriel Condorcanqui)를 기리기 위한 오페레타의 콘도르칸키 테마곡으로 안데스 민속음악에서 따왔다. 사이먼앤드가펑클의 노래로 널리 알려졌다.
페루 독립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는 결국 스페인군에 붙잡혀 참수당했다. 잉카인들은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환생한다고 믿었다. 마추픽추에는 이같이 애잔한 역사가 서려 있어 후세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 깊은 여운을 남기는지도 모르겠다.
마추픽추=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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