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 때도 “튼튼”
신흥국 비해 상대적 양호 불구
기업 자금조달·가계부채 ‘부담’ ‘버냉키 쇼크’에 다시 ‘펀더멘털’이란 용어가 회자한다. 한국은 경제기초(펀더멘털)가 양호하니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게 요지다. 정부 관료, 한국은행 간부, 민간 경제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다.
한국은행의 한 금융통화위원은 “한국은 노 프로블럼(No Problem)”이라고 했다. 양호한 경제여건으로 미국 양적완화 축소의 충격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1차관이 23일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밝힌 낙관론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기업 자금조달 어려움과 가계 이자상환 부담 증가는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찍이 국가부도 위기를 겪은 바 있는 한국인에겐 ‘펀더멘털 트라우마’가 있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코앞인데도 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는 “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했다. 이후 펀더멘털 운운하는 것은 ‘믿기 어려운 수사’가 돼 버렸다.
이번엔 다를까. 이틀간의 금융시장 모습을 보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기는 하다. 환율과 주가가 다른 신흥국에 비해 덜 요동쳤다. 코스피는 19일 1888.31에서 21일 1822.83으로 3.47% 하락했다. 인도네시아 6.75%, 러시아 5.38%, 멕시코 4.92%, 필리핀 4.80% 등에 비해 낙폭이 작았다.
금융시장 반응이 지나치다는 진단이 나오는 것도 양호한 펀더멘털 때문이다. 한은 한 간부는 “주가가 그렇게 빠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 출구전략 시간표에 담긴 미국 경기회복 신호보다 유동성 회수 등 부정적 신호에만 과민하게 반응한 결과라는 것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1일 “(버냉키 발언이) 미국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논의에서 나왔다는 건 우리 경제에 플러스”라고 했다.
펀더멘털이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뛰기 시작한 금리로 기업 자금조달은 더욱 어렵게 됐다. 가계부문은 특히 심각하다. 지난해 말 최고점을 찍고 한풀 꺾이는 듯하던 가계부채는 4·1부동산대책 이후 다시 급증세로 돌아선 상황이다. 자영업자 등 부채를 포함하면 1000조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금리상승으로 가계의 이자상환 부담은 갈수록 커질 테고 이는 부동산시장 침체 심화, 금융회사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당장 4월 말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잔액 725조9000억원만 대상으로 추산해도 연간 이자부담은 한 달 전에 비해 2조5000억원 가까이 증가할 전망이다. 22%가량의 고정금리 대출을 제외한 잔액에 국고채 3년물 금리 변동(연 2.60→3.04%)을 반영한 추산이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재임 당시 “가계부채를 생각하면 밤잠을 못 이룬다”고 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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