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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바꾸는 데엔 의견 접근… 경협 확대엔 이견 노출

입력 : 2013-06-26 16:22:13 수정 : 2013-06-26 16: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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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金 발언으로 본 현안별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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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공식 정상회담을 한 차례 연기하면서까지 서해상 북방한계선(NLL)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이르는 광범위한 현안을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은 NLL을 무효화하려는 김 전 위원장의 ‘평화수역화’ 방안에 동조하는 언급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전 위원장을 만나 북한 체제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남북한이 손잡고 북핵 문제를 해결한 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켜 점진적 통일을 이루겠다는 구상을 설파했으나 김 위원장은 북핵 같은 곤란한 현안에 대해선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은 채 NLL 무력화(無力化) 등을 시도했다.

◆김정일, NLL 문제 꺼내들며 노무현 압박

103쪽에 이르는 정상회담 회의록 가운데 12쪽 분량이 NLL과 서해 평화협력지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NLL 문제가 남·북문제에 있어서 제일 큰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며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그러나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서해평화협력지대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해주항을 거론하며 “항을 당장 개방하는 것을 내가 결심하라는가, 그건 문제 없다”며 “(북한 군부의 의견으로는)내 결심에 담보가 필요한데 (중략) 양측이 결단을 내려서 그 옛날 선들(NLL과 북한 주장 해상분계선) 포기한다… 이렇게 발표해도 좋지 않겠냐”고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예, 좋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후 발언에서 노 전 대통령은 명시적으로 NLL 포기발언을 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NLL을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라면서 “위원장이 구상하신 공동어로 수역을 이렇게 군사 서로 철수하고 공동어로하는 평화수역 말씀에 대해서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상회담 직후 열린 남북 국방장관회담(2007년 11월)에서는 공동어로구역 설정문제를 놓고 남북의 견해가 충돌했다. 우리는 NLL을 기선으로 하자고 했으나 북측은 1999년 북측이 선포한 해상군사분계선과 NLL 사이를 공동어로구역으로 지정하자고 맞섰다.

◆노무현, 경협 수익으로 군비 확충 제안

노 전 대통령은 북한 군부가 경협 확대에 반대하는 김 전 위원장의 언급에 “군부가 이 사업에 적극 참여해서 그래서 군비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 곳을 강화해나가는 방안을 모색해가는 방안이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제일 중요한 것은 군사적 보장…(경협)합의가 되면 군사적 보장이 따라와 주어야 하는데…”라고 덧붙였다. 남북경협 확대 과정에서 북한 군부의 반발을 누그러뜨리자는 취지의 발언이었으나 경협 수익으로 북한군의 군비를 강화하는 방안을 유인책으로 제시한 것은 군 통수권자로서 부적절한 언급이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은 “그건 얘기를 하면 길어질까봐 다음 기회에 얘기를 할 수도 있고…”라면서 즉답을 피했다.

◆김정일의 ‘북핵 양보’ 칭찬한 노무현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007년 10월3일은 6자회담에서 북핵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단계 조치(10·3합의)가 타결된 날이었다. 김 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과의 회담 석상에서 6자회담에 참석하고 돌아온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불러 합의안을 설명하도록 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김정일)위원장께서 이번에 확실히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결단하시고 많은 양보를 하신 것으로 그렇게 보고받았다고, 그렇게 이해가 됐다”면서 김 위원장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김 부상은 10·3합의 중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신고’ 의무와 관련, “무기화된 정형은 신고 안 한다”고 보고했다. 북한이 핵무기는 신고할 의사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 과정에서 북한의 핵폐기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회의록엔 6자회담 과정에서 북한을 편들겠다는 언급들이 많았다. 특히 미국이 북측에 제공하길 꺼리는 경수로 발전소를 반드시 지어주겠다는 발언도 있었다. 결국 6자회담은 2008년 북한의 과거 핵활동 신고 내용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파국을 맞게 됐다.

2007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앞줄 왼쪽)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마친 뒤 담소하며 백화원 영빈관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남북경협 공단 확대 놓고 의견차

회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개성공단 등을 비롯한 남북경협과 관련, 북한의 개혁·개방을 통해 김정일 체제를 흔들어야 한다는 국내 보수 진영의 논리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독일식 (흡수)통일에 반대한다고 했다. 북한 (김정일)체제가 유지된 토대 위에서 북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 남한에도 유리하다는 언급도 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시장경제에 말려들어 정신적 재난이 올 수 있다”면서 개성공단 같은 경협특구를 추가로 지정해달라는 노 전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했다. 노 전 대통령이 해주 지역에 남북 경제특구를 설치하자고 하자 “해주는 군사력이 개미도 들어가 배길 수 없을 정도로 집중된 곳”이라면서 “군대가 우선 반대할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김정일, ‘우리 민족끼리’ 합창

남북정상회담장은 미국과 일본, 중국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두 사람은 ‘민족 자주’를 앞세우며 미국과 일본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공유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제일 큰 문제가 미국”이라면서 반미 시각을 보이면서도 “고립을 자초하는 자주는 할 수 없는 것”이라는 현실론을 펴기도 했다. 일본을 향해서는 두 사람 모두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안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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