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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름다운 박물관] 아픈 과거사의 흔적을 찾아서-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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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0-01 18:04:52 수정 : 2014-01-08 00: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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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은 일제시대에 가장 번화한 항구도시 중에 하나였다.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실어나르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제의 약탈로 인한 피해가 극심한 곳이기도 했다. 군산은 지금도 일제에 의해 지어진 근대건축물이 가장 많아 남아있다. 일제시대의 조선은행 건물이 있고, 세관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여기에 국내에서는 하나뿐인 일본식 사찰도 보인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일제로 인한 아픈 과거사를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생긴 곳이다.  지난 2011년 11월 문을 연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은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근대시설들을 조명하고 관찰할 수 있는 출입구와 같은 곳이다.  

군산 도심에서 2.5㎞ 인근에 흩어져 있는 근대시설은 170개. 군산시는 근대역사박물관을 중심으로 원도심 일대의 건물을 근대역사문화밸트화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적지않는 시민들이 일제잔재를 보호하는 것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중규 학예연구사는 ”조상의 훌륭한 업적만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 아프고 슬픈 과거도 엄연한 역사이기에 일제의 침탈을 그대로 보여주고, 후세에게 잊지 말자는 것이 이곳의 존재이유”라고 역설했다.
 
군산시 장미동에 자리한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맨 먼저 현관 옆에 2층 높이의 등대가 관람객을 반긴다. 국내에서 아름답기로 이름난 어청도 등대를 축소해 놓은 곳이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의 관람객들은 등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박물관 기행을 시작한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8,347㎡의 대지 위에 전체면적 4,248㎡ 크기의 3층 규모의 현대식 건물로 지어져있다.  

1층은 해양물류역사관과 어린이박물관, 수장고가 있다. 2층에는 근대자료 규장각실이, 3층에는 근대생활관과 기획전시실, 세미나실이 자리 잡고 있다.

해양역사박물관으로 이동하면 군산과 고군산열도에서 발굴한 고려청자 등 도자기가 전시돼 있다. 전시관 가운데 자리 잡은 낡고 작은 목조선이 보인다. 선조들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높은 파도와 싸워야 했을 모습이 떠오른다. 

그 옆에는 이 지역 출신으로 충청수군절도사를 지냈던 최호장군이 남긴 삼인보검(三寅寶劍)이 눈길을 끈다. 길이 94cm가량의 이 보검은 1596년에 선조가 하사한 것이다. 최호장군은 1597년 정유재란 중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서 전사했다. 

이곳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유물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요즘은 보기 힘든 영여(靈與)도 전시되어 있다. 영여란 영혼이 타는 수레를 의미한다. 혼백과 신주, 곧 죽은 이의 위패를 모시고 돌아올 때 쓰는 가마를 말한다.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의 잉여는 제주고씨문중에서 기증한 것이다.
 

박물관 3층으로 자리를 옮기면 근대생활관과 기획전시실이 나온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 존재하는 이유를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성업했던 군산이 명동 상가를 옮겨놨다. 잡화점에서는 요즘 보기 힘든 물건들이 자리하고 있다. 

인력거방에는 재력가들이 이용했을 법한 인력거가 놓여있다. 당시 사용하던 인력거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옆에는 일본으로 쌀을 보내던 미곡시행소가 자리하고 있다. 칠판에는 쌀의 시세차익이 적혀있어, 흡사 요즘의 증권거래시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곳에서는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토요일에 연극공연을 하기도 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검정고무신과 술도매상. 군산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경성고무가 기증한 ‘만월표경성고무 신발’이 놓여있다. 

벼를 선적할 때 쓰던 부장교 축소모형과 저장고도 재현했다. 조선인 빈민가를 보여주는 토막집에서는 곤궁했던 우리 선조의 생활상이 엿보인다.

그런가 하면 군산 최대의 번화가라는 거리가 재현돼 대조를 이룬다. 다다미가 깔린 군산극장에는 오늘도 흑백영화 필름, ‘미워도 다시 한 번’이 돌아가고 있다. 

옆으로 자리를 옮기면 일제에 저항한 선조의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옥구농민항쟁. 군산 만세운동, 전북지역 독립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영명학교(현 군산제일고)와 관련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1892년 개항된 군산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도 보인다.

이곳에서 만나는 근대 유물들은 대부분 지역주민과 학교 등에서 기증한 것이어서 더욱 뜻깊은 것들이다. 학생복과 흰색 저고리를 입고 사진을 찍어보는 것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느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곳에서는 매주 토요일 두 차례에 걸쳐 연극을 공연한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인형극이 선보인다. 지역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공연을 보면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박물관을 나서면 본격적인 근대식 건물을 만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건물이 조선은행군산지점(구 18은행 군산지점). 이 건물은 2008년 7월 3일 등록문화재 제374호로 지정되었다. 당대 유명한 건축가로 잘 알려진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가 1923년 설계한 벽돌건물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한국과 대륙의 경제 수탈을 목적으로 일제가 세운 것이다. 광복 후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했다. 

정면에 돌출 현관을 중심으로 평아치를 5개 세우고 양쪽에 각각 1개씩 반원형 아치를 두었다. 일제강점기 군산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濁流)’에 나오는 주인공  초봉의 남편 고태수가 다니는 은행으로 묘사된 곳이다. 지금은 군산근대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군산근대미술관에서는 군산출신 대표작가인 하반영 화백이 기증한 100여 점의 작품 중 주요작품 30여 점을 선정해 ‘붓으로 그린 민족의 혼(魂)’이란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또 하나의 근대 건축물인  군산세관이 자리하고 있다. 근대역사박물관은 나란히 위치 한 조금은 초라해보이는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그곳이다. 1908년도에 건립된 이 건물은 유럽양식으로 당시만 해도 "최신식’건물을 대표한 것이었다.  서울 남대문에 있는 한국은행 본점과 같은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다. 

역사박물관 바로 옆에는 미즈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기에 그만이다. 이 건물은 근대역사박물관 건너편에 있던 것을 2012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1930년대 무역회사 흔적이 남아있는 이 건물에서는 카페테리아와 근대문학 소통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군산=글·사진 김현주 기자 

본 콘텐츠는 <가족을 생각하는 TOYOTA(도요타)>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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