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만을 상대하던 전통적 외교에서 벗어나 문화, 지식, 미디어, 언어, 원조 등의 수단을 이용해 상대국 국민에게 직접 다가가는 공공외교가 21세기 외교의 중심축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공공외교 분야에서 후발주자다. 2012년 말에야 외교부에 공공외교정책과가 설치됐고, 올해 처음으로 관련 예산이 편성됐다. 출발은 늦었지만 한국은 최근 공공외교 분야에서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
네덜란드는 2002년 한일월드컵과 히딩크 감독의 활약으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국가다. 하지만 이 나라의 주요 교과서는 최근까지도 한국을 여전히 가난한 후진국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특히 네덜란드 3대 교과서 출판사 중 한 곳인 ‘티메뮤렌호프’의 초등학교 지리교과서에는 한국의 재래식 어시장 사진과 함께 ‘값싼 임금으로 생선을 손질해 파는 어업국가’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주네덜란드 한국대사관은 우리의 발전상을 현지 교과서에 반영시키기 위한 공공외교를 펼쳤다. 이기철 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들이 네덜란드 교육부 차관보와 3대 교과서 출판사 사장, 교과서집필자협회장, 집필 책임자 등 교과서 관계자 50여명을 면담하며 한국의 변화상을 집중 설명했다. 지난 3월에는 교과서 집필 관계자 16명을 서울로 초청해 한국문화연수까지 받게 했다. 이들이 한국의 발전상을 직접 체험하고 느끼게 되면 생각이 바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티메뮤렌호프’ 출판사의 개정전 초등학교 지리교과서. 재래식 어시장 사진과 함께 수산물을 다듬어 파는 어업국가로 우리나라를 소개하고 있다. |
이란에서는 역사적 소재를 활용한 ‘쿠시나메 공공외교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쿠시나메’는 쿠시의 책이란 뜻으로 오랜 세월 구전되다가 11세기에 필사된 고대 페르시아의 구전 서사시다. 이 서사시는 특히 6∼7세기 신라 공주와 페르시아 왕자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KBS는 지난 5월 이 서사시를 소재로 페르시아와 신라의 교류 가능성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를 선보였다. 이란국영방송(IRIB)이 이를 이란 전역에 방영해 이란 전체 국민(약 7500만명) 가운데 375만명 정도가 시청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주이란대사관은 지난 6월 서울에서 쿠시나메에 대한 양국 학자들의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한 데 이어 올해 말에는 번역본을 출간해 양국민 간 쌍방향 이해과 친밀감을 높일 계획이다. 또 앞으로 이 서사시를 애니메이션과 동화, 드라마, 연극, 창작춤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개발할 방침이다.
브라질에서도 한국의 공공외교는 화제다. 주 상파울루총영사관은 현지 진출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브라질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말부터 6회에 걸쳐 문화강연을 실시하고 있다. 현지 근로자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강연을 듣고 태권도시범과 사물놀이 등의 문화체험을 하면서 한국을 보다 가깝게 느끼게 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이는 생산현장에서 발생하는 양국 간 문화충돌을 방지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우리 대사관과 교민들이 공공외교 차원에서 현지 주민과 함께 50ha 규모의 우호림을 조성 중이다. 산림면적을 국토면적의 10%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케냐 정부의 정책을 적극 지원하면서 현지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는 효과를 낳고 있다.
지난 9월 개정된 티메뮤렌호프사의 새 지리교과서. 반도체 공장의 작업 모습과 함께 한국을 최첨단 스마트폰 등을 수출하는 고도 산업국가로 기술하고 있다. |
박근혜정부는 세계적 추세에 맞춰 공공외교에 힘을 싣고 있다. 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2014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외교부의 공공외교 역량 강화 지원 사업은 내년 예산이 90억원으로 편성됐다. 이는 올해(67억원)보다 약 45% 늘어난 액수다. 재정적자를 막겠다는 균형재정 기조에 따라 각 부처의 사업예산이 대부분 삭감됐지만 공공외교 예산만큼은 지속적으로 키워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외교부는 현재 다양한 국가 및 지역과의 공공외교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공공외교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한·중 공공외교 포럼’이 지난달 서울에서 발족했다. 양측 대표단은 ▲청년교류사업 발굴·확대 ▲교육협력 강화를 통한 언어학습기회 확대 ▲언론과 네티즌 교류 확대 ▲공공외교 연구기관 간 학술교류 사업 시행 ▲양국 국민 공동여론조사 등 9개항의 협력 방안이 담긴 ‘한·중 공공외교 협력 강화를 위한 건의문’을 채택했다. 양국은 또 매년 1차례 공공외교 포럼을 개최하기로 했다.
지난 8월31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개최된 ‘제2회 퀴즈 온 코리아’에서 뉴질랜드의 마이클 스미스가 우승상을 받고 있다. 세계인의 마음을 사는 공공외교의 일환으로 열린 이 대회는 30개국에서 공관별 예선을 거쳐 최종 30명이 참가해 뜨거운 경쟁을 벌였다. 외교부 제공 |
외교부는 이와 함께 지역별 중·장기 공공외교 전략을 수립하고 조직 개선 방안을 찾는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다. 외교부는 특히 지역별 외교전략 수립을 위해 인도와 브라질 등 주요 10개국을 대상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 조사도 벌이고 있다.
외교부는 이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공공외교 조직강화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공공외교는 외교부 문화외교국 소관으로 주요 업무는 공공외교정책과가 맡고 있으나 재외공관의 폭증하는 공공외교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는 공공외교 조직을 별도의 실 단위로 확대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동진 기자 bluewin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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