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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국민 자존심 무너뜨린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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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0-13 21:41:54 수정 : 2013-10-13 21:5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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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단청 검증안된 전통기법 사용
시간 걸리더라도 복원 의미 살려야
‘전통단청 맥 끊겼는데 내년 숭례문 채색…재현이냐 실험이냐 논란.’ 세계일보 2011년 4월27일자 1면에 실린 머리기사 제목이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숭례문 복원 작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기사였다. 전승조차 되지 않은 옛 단청 기술을 무리하게 적용하려는 데 대한 문제 제기였다. 안타깝게도 우려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숭례문 단청 20군데가량에서 나무가 벗겨지는 박락 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숭례문 복원작업이 끝난 지 이제 겨우 5개월 지났을 뿐이다.

국보 1호라는 자부심에 먹칠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책임은 전적으로 문화재청에 있다. 충분히 예상할 만한 일이었는데도 우려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 않은 결과다. 당시 문화재청 관계자는 “전통기법 적용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보도를 계기로 전통방식의 단청 기법에 대한 실태조사와 연구에 나선 것으로 안다. 제대로 했을지 의문이다. 방화범은 국보 1호를 태워 버렸고 문화재청은 국민 자존심을 무너뜨린 셈이다.

우리 옛 장인들은 단청에 돌가루 성분의 천연안료와 아교를 썼다. 희귀광석인 뇌록석을 곱게 갈아 만든 뇌록을 밑바탕에 칠한 뒤 다른 석채로 색을 냈다. 그래서 은은하면서 단아한 느낌을 준다. 통풍성이 좋아 석재를 오래 가게 한다. 요즘의 단청은 화학안료를 쓰다 보니 명도가 높아 화려하기만 하다. 나무에 막을 형성해 문화재를 훼손할 수 있다. 화학안료를 써서 억지 고색(古色)을 내다보니 박락 현상 외에도 흰색 얼룩이 떠오르는 백화(白化) 현상이 나타난다.

천연안료는 1900년대 초 서구에서 값싸고 쓰기 편한 화학안료가 들어오면서 밀려났다. 동물 뼈나 가죽 등을 고아 만드는 아교도 1980년대 이후 아크릴에멀션으로 대체됐다. 결국 지금의 단청 기법은 문양만 전승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방식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뇌록을 비롯해 각종 석채와 아교에 대한 고증과 철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석채와 아교를 다루는 기술도 그리 간단치 않다. 그런데도 문화재청은 국보 1호를 대상으로 과감히 도전에 나섰다.

전통방식의 숭례문 단청은 의미가 크기는 하지만 너무 성급했다. 안료와 아교도 일본에서 들여왔다. 국내 유일의 문화유산 관련 종합연구기관인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한 일은 전통 재료 복원이 아니라 외국산 재료 샘플 테스트였다. 당시 복원을 맡은 단청장 홍창원씨에게 “전통방식 복원에 자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실험을 해서 큰 지장이 없다면…”이라고 답했다. 이번 단청 박락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아교에 대해서는 “써 본 적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박희준 워싱턴 특파원
지난여름 아이들과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생가가 있는 마운트버논을 찾았다. 워싱턴 대통령이 살던 건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본관 관람의 첫 경유지는 65㎡(약 20평) 크기의 대형 식당이다. 공교롭게도 벽지 색깔이 단청의 뇌록에 가까운 연한 초록색이다. 워싱턴 대통령이 ‘뉴룸’으로 부른 이 식당은 지난 1월부터 복원 작업 중이다. 벽지와 장식 문양, 천장 페인트칠 등을 다시 하는 일이다. 3명의 건축 화가가 내년 1월 말 완공을 목표로 일하고 있다.

복원작업에 수전 밥이라는 과학자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는 페인트의 역사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다. 워싱턴 대통령 시절과 똑같은 페인트를 만들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실험을 계속했다고 관리소 측은 설명했다. 방 하나를 최대한 원형대로 복원하기 위해 수년간 재료를 연구하고 1년간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다시 숭례문 전통기법을 종합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여론의 호된 질책을 피하기 위한 수습책이 아니길 바란다. 숭례문에 전통방식의 단청을 적용한 이상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통 복원의 의미를 되살리는 게 중요하다. 2년여 전 세계일보가 지적한 전통 밀랍주조 방식의 범종 복원 기법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방식으로 문화재를 대상으로 실험하는 건 옛 장인들에 대한 모독과 다름없다.

박희준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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