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도 자기계발로 여기는 세태 변화 탓
자극적 연출·거짓 사연·병원 광고 도마위
이효리 눈웃음, 송혜교 피부 안 될까요? 만들어주세요.” 2000년대 초반 성형 열풍이 강타하면서 인기 연예인의 이름은 성형외과의 단골 메뉴가 됐다. 그런데 ‘아무도 몰랐으면…’ 했던 은밀한 욕망이 이제는 전 국민 앞에 보일 정도로 대담해지고 있다. 최근 방송가에는 참가자들을 개조·변신시켜주는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화장품·옷 등을 추천해주는 ‘스타일 프로그램’을 넘어 외모와 태도를 바꿔주겠다며 자극적인 사연의 주인공을 찾아 나선다. ‘렛미인’(온스타일), ‘변정수의 룩앳미’(GTV), ‘버킷리스트’(KBS W채널), ‘미녀의 탄생: 리셋’(Trend E) 등 성형 프로그램은 매회 화제를 낳으며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성형도 자기개발… 세태 변화
“여자지만 여자로 살 수 없었던 지난 30년. 그리고 140일간의 기적. 과연 그녀는 여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성우의 말이 끝나자 말끔한 외모의 한 여성이 등장한다. “완전 여자다, 여자”라는 환호와 함께 진행자들은 성형과 다이어트 등 육체적 고통을 이겨낸 ‘영광의 주인공’을 축하해준다. ‘털 많은 여자’ 김모씨의 변신을 다룬 ‘렛미인’의 한 장면이다.
한 컨설팅 업체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메이크 오버’(변신) 하고 싶은 부분에 성격(48%), 외모(40%)가 꼽혔고, 바꾸기 쉬운 분야로는 외모(55%)가 1위를 차지했다. “‘의느님’(의사와 하느님의 합성어)이 해결해주니까”, “돈만 있으면 되니까”, “조금만 노력해도 큰 효과가 나타나니까” 등이 이유였다.
이런 세태 변화를 타고 방송에도 성형 주제가 부쩍 늘었다. 예능에서 연예인의 성형을 다루는 비율이 늘었고, 급기야 일반인을 전신 성형해주는 ‘메이크오버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케이블방송 위주지만 화제성은 시청률 높은 지상파 드라마와 맞먹는다.
일반인의 참여도 적극적이다. 도전자들은 성형의 두려움이 아닌 탈락의 서글픔으로 눈물을 흘린다. 매회 신데렐라는 단 한 명. 전신 성형을 해야 하는 이유를 호소한 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최종 1인이 선정된다.
대중문화평론가 하재근씨는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의 등장은 자기계발 열풍과 맞닿아 있다”며 “외모 변신을 통해 쉽게 변하고 싶지만 물질적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법사가 아니라 연출일 뿐
이런 프로그램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물론 성형을 제외하면 ‘메이크오버 프로그램’들은 하관이 지나치게 발달한 사람, 남자처럼 털이 많은 여자, 이가 까맣게 썩어 끔찍한 치통에 시달리는 사람 등 외모로 인해 삶이 뒤틀린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소개하는 장점이 있다. 소외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비추면서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중매체에서 외모 변화를 통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방송 노출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출연하는 일반인들이 많은데 이에 대한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며 “방송은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가 아니라 ‘지니’ 같은 연출을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여성은 위를 잘라내는 ‘위 밴드 수술’로 70kg 감량했다며 주목받았지만 이후에 사망했다.
최근 방송가에는 ‘렛미인’(온스타일), ‘미녀의 탄생: 리셋’(Trend E) 등 참가자들을 개조·변신시켜주는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각각 진행을 맡고 있는 황신혜와 안선영. |
‘의느님’으로 출연하는 의사와 방송 프로그램의 유착 문제도 제기된다. 방송가에 따르면 유명 의사는 정해진 섭외 절차를 거쳐 모시지만, 그 외 개원의들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대가를 받고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선영씨는 “방송에서 판타지를 힐링(치유)로 몰아가는 데는 실상은 이를 통해 광고하려는 성형외과가 뒤에 있다”며 “상업적 측면에 대한 경계심을 지닐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현미·김승환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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