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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 윤봉길 조카 "北 가면 반길 줄 알고…"

입력 : 2013-11-22 19:48:19 수정 : 2013-11-22 22: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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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동경에 2009년 월북… 이용만 당하다 10월 송환
檢, 보안법 위반 6명 구속기소
매헌 윤봉길 의사의 친조카인 윤모(66)씨는 4년 전 밀입북을 계획했다. 지독한 가난이 이유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할 때만 해도 그는 평범한 중산층이었다. 게다가 ‘독립투사의 혈육’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 도움으로 회사도 경영하는 등 생활은 남부럽지 않았다. 1996년 위기가 찾아왔다. 경영난으로 회사문을 닫게 된 것. 곧이어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별다른 경제활동 없이 윤봉길기념관에 머물며 근근이 생활하던 윤씨는 북한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윤봉길 조카라는 점을 밝히면 북에서 대접을 잘해 줄 것이라는 망상에 빠졌다. 2009년 9월 중국으로 가 북한대사관에 월북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북측은 “나중에 연락할 테니 서울로 돌아가라”며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런데도 마음을 고쳐먹지 못한 윤씨는 중국에 머물며 기회를 노리다 2010년 1월 얼어붙은 두만강을 넘어 밀입북했다. 이후 북한 보위부에 붙잡힌 그는 김정일 분향소 참배 등 체제 선전에 동원되며 실컷 이용당한 뒤 남한으로 강제 송환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최성남)는 밀입북했다 지난달 25일 송환된 6명 중 3명을 구속기소한 데 이어 윤씨와 송모(26)·이모(64)씨 등 나머지 3명을 북한에 몰래 들어가 북측 관계자들과 접촉한 혐의(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 및 찬양·고무 등)로 구속 기소했다고 22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 탓에 남한 자본주의 체제에 반감을 갖게 된 송씨는 2009년 중국을 경유해 2010년 1월 입북했다. 이씨는 농사와 사진 촬영, 막노동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다 남한 생활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2006년 3월 가족과 함께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가 밀입북을 요청했지만 북측이 “자녀들의 밀입북 의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 등으로 거부하는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2011년 5월 압록강을 넘어 밀입북했다.

김준모 기자 jm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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