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호(61·사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은 한국 경제의 신년 화두로 ‘줄탁동시(?啄同時)’를 제안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안에서 껍질을 쪼면 동시에 어미도 밖에서 쪼아 깨뜨린다는 뜻의 한자성어이다. 오 사장은 6일 “너와 내가 동시에 힘을 기울여 함께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담은 줄탁동시라는 화두가 새해에는 공감대를 얻어 수출전선에서 대·중소기업과 노사가 힘을 합치고, 정치권에서도 여야가 하나가 돼 신명나는 수출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소망했다. 하지만 현 상황이 그다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지금처럼 국내외 경제 각계에서 분열이 커져서는 성장은커녕 안정적인 수출조차 장담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오 사장은 전체 수출에서 중소·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33∼34%에 불과하고, 중소기업 중 수출기업이 2.7%에 그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리가 수출 좀 한다고 자랑하지만, 중소기업으로 보자면 아직 멀었다”고 단언했다.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비중은 최소한 40%까지 끌어올리고, 수출하는 중소기업이 4∼5%에 달해야 무역 2조달러를 바라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과는 하루빨리 경제협력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 사장은 “일본이 올해 우리나라에 투자한 규모는 전년 대비 40% 줄었다”며 “일본이 전체적으로 해외투자를 줄인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쪽으로는 두 배 이상 늘렸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부지를 매입해 공장이나 사업장을 새로 짓는 방식의 그린필드 투자를 대부분 선호하는데, 이를 적극 유치해 국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 오 사장의 생각이다.
―3년 연속 무역규모 1조달러 돌파를 평가한다면.
“무역 1조달러 유지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2008년 이전 1조달러 이상 기록한 나라는 미국, 중국, 독일, 일본, 프랑스 5개국이었다. 2008년에 처음으로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가 합류했다. 이후 금융위기가 확산하자 이들 3개국은 나란히 미달됐다. 2010년 네덜란드가 먼저 올라섰고, 2011년 영국, 이탈리아에 우리까지 9개 나라가 됐다. 이탈리아는 작년에 또 빠졌고, 올해도 달성이 쉽지 않다. 무역 1조달러를 3년 동안 유지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기업과 산업의 ‘기초체력’이 강해졌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동시에 세계무역 흐름도 안정적인 추세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1962년 수출입국을 기치로 내건 지 51년 만에 ‘무역 3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내가 말하는 무역 3관왕은 3년 연속 무역규모 1조달러를 유지하면서 수출은 해마다 3000억달러 이상, 무역흑자를 3년 연속 이어가는 것이 기준이다. 지구촌에서 이를 동시에 이룬 나라는 우리를 포함해 여태껏 4곳밖에 없다. 우리 말고는 중국, 독일, 네덜란드가 고작이다.”
―내년도 수출 전망은.
“선진국 경기가 밑바닥에서 올라가는 추세라는 게 다행이다. 미국 경기는 셰일가스를 위시해 제조업이 살아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바닥을 찍은 탄력으로 더는 나빠지지 않고 완만하게나마 경기가 호전될 것이다. 다만 금융위기 이후 세계 무역과 경기를 이끈 신흥국이 예전처럼 고성장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점은 걱정이다. 신흥국 성장률은 내년도 완만해질 것으로 본다. 그다음 우려는 엔저(엔화약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대일 수출은 올해보다 더 어려워지고, 제3시장에서 일본과 경쟁을 붙는다면 아무래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내년 무역환경은 전반적으로 올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본다. 우리 주력 업종과 기업이 강세를 띠는 품목이 경기 상승세에 놓여 있다. 지난해 우리 수출이 고전한 이유는 조선 쪽이 내리막길이었고, 반도체도 어려웠던 데 있다. 이들 품목의 경기는 상승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다.”
―2020년까지 무역 5강, 무역규모 2조달러 달성, 가능한 목표인가.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라고 본다. 아니, 할 수 있다. 무역규모가 2조달러 이상인 국가는 현재 미국과 중국, 독일인데 이 중 미국과 중국은 3조달러대이다. 2조달러대로 들어가려면 독일 수준으로 발전해야 한다.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로 보면 5% 안팎이어야 2조달러대로 진입할 수 있다. 1조달러면 3%대인데, 작년 우리는 3.1%였다. 2%를 더 끌어올려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무역 5강에 앞서 수출 5강부터 들어야 한다. 지난해 우리는 5400억달러어치를 수출해 세계 7강에 들었다. 6위 프랑스는 5500억달러 규모인데, 우리와 차이가 없다. 5위 네덜란드는 8000억달러대로 3.6%를 차지했다. 6년 내 네덜란드와의 격차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수출하는 중소·중견기업을 늘리는 일이 무역 2조달러, 세계 5강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현재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332만개 정도 된다. 그중에서 수출하는 기업은 약 8만600개다. 전체의 2.7%에 그치고 있다. 영국과 독일은 이 비율이 10%를 넘는다. 이탈리아도 5%나 된다. 내수에만 매달리는 중소기업을 수출로 돌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내수기업은 무역실무도, 시장상황도, 바이어도 모르기 일쑤이다. 그래서 코트라 직원이 멘토로 나서 1개 기업을 맡아 수출해서 대금이 들어올 때까지 돕는 ‘수출 첫걸음 사업’을 올해부터 시작했고, 내년에는 더욱 활성화할 방침이다.”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을 늘려나갈 방안은.
“때마침 한류가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류를 입은 아이템을 더 개발해 수출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화장품이다. 연 수출 증가율이 18%이다. 한류로 화장품을 비롯한 소비용품이 잘 팔리고 있다. 첨단제품, 드라마를 비롯한 콘텐츠 등 한류에 편승한 제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의 강점이 토목, 건설, 항만, 공항 건설공사를 비롯한 사회간접자본(SOC) 프로젝트에 있다. 이런 쪽으로 해외진출을 더 많이 해야 한다. 그런 시장이 마침 생겨나고 있다. 현지에서는 ‘한국과 같이하자’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거기에다 내년에는 이란 시장이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 리비아도 내전이 끝나 재건 중이다. 이런 시장들이 열리고 있다.”
―중국 내수시장은 어떻게 공략하나.
“현지 내수시장의 출발점인 시안과 더불어 쓰촨성의 청두, 충칭 등을 중심으로 개척할 작정이다. 최근 중국 공산당이 3중 전회를 마치고, 최고 우선순위로 꼽은 경제정책으로 ‘신도시화’를 제안했다. 대도시와 농촌의 중간지역을 도시화하겠다는 것인데, 우리는 도시 건설에서 파생되는 2차산업에 진출할 수 있다. 인테리어 수요도 있을 것이고, 도시가 생기면 첨단 지능교통 시스템도 필요할 것이다. 첨단 IT(정보기술) 시스템 쪽에서 새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신도시화를 통해 앞으로 10년 동안 상하이만 한 도시가 800개 생긴다는 게 현지 전언이다. 중국 정부가 산아 제한을 완화하기로 한 것도 우리로서는 호재다. 육아용품을 비롯한 파생수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미세먼지로 고생하고 있지만, 중국은 더하다. 뒤집어보면 중국 환경시장을 공략하는 쪽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있다는 얘기다.”
대담=황계식 산업부 차장 cult@segye.com, 사진=김범준 기자
■오영호 코트라 사장 약력
▲1952년 서울 출생 ▲서울고 ▲서울대 공과대 화학공학과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경제학 석사 ▲경희대 경제학 박사 ▲23회 행정고시 ▲상공부 사무관 ▲국무조정실 외교안보심의관·산업심의관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 ▲주미 대사관 상무관 ▲산업자원부 차관보·자원정책실장·제1차관 ▲대통령비서설 산업정책비서관 ▲서강대 에너지환경연구소장(교수)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서울 G20(주요 20개국) 비즈니스 서밋 집행위원장
▲1952년 서울 출생 ▲서울고 ▲서울대 공과대 화학공학과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경제학 석사 ▲경희대 경제학 박사 ▲23회 행정고시 ▲상공부 사무관 ▲국무조정실 외교안보심의관·산업심의관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 ▲주미 대사관 상무관 ▲산업자원부 차관보·자원정책실장·제1차관 ▲대통령비서설 산업정책비서관 ▲서강대 에너지환경연구소장(교수)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서울 G20(주요 20개국) 비즈니스 서밋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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