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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길 먼 환자 알권리] 한 환자 나가면 바통 이어받 듯… 인사 나누면서도 차트정리 바빠

입력 : 2013-12-12 08:32:13 수정 : 2013-12-15 23: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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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 의사의 하루 “설 후에 봅시다.”

5일 서울의 한 공공병원에서 만난 가정의학과 A과장(46) 스케줄표에는 3개월 뒤 진료 일정까지 빼곡히 적혀 있었다. A과장은 모니터 2대를 켜 놓고 병력, 진료기록 등을 확인하면서 환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환자가 나가면 바통이라도 이어받듯 곧바로 다음 환자가 들어왔고, A과장은 인사를 나누면서도 이전 환자의 차트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디스크로 찾아온 60대 여성은 A과장이 치료와 요양방법을 설명해주자 호흡곤란, 두통, 다리 통증 등까지 호소하며 온몸이 아프다고 했다. 웃으며 환자들을 대하던 A과장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굳어갔다.

의사들이 ‘설명의무’를 제대로 지키기 어려운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5일과 6일 2명의 의사를 동행 취재했다. 외래진료가 비교적 적은 외과의사도 환자 만날 시간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6일 아침 일찍 수도권 한 대학병원에서 만난 B교수(47)는 “논문 마감 때문에 밤을 새웠더니 식욕이 없어 아침도 걸렀다”며 회진을 위해 입원병동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기침 해보세요. 가래가 많네요.” “알려드린 운동 꼭 하세요.”

20분간 10명의 환자와 짧은 대화를 나눈 B교수는 “수술이 잡힌 날은 회진을 10분 만에 끝내야 할 때도 많다”며 진료실로 향했다. 이날 오후 위암 환자인 송모(71)씨 가족에게 수술 방법·과정, 합병증 등을 설명하던 그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스쳤다.

“위암 3기 환자의 경우 수술이 성공해도 50% 이상 재발합니다. 재발하면 완치가 어렵고 대부분….”

말 끝을 흐리던 그가 “돌아가시게 됩니다”라고 하자 송씨 가족들은 짧게 신음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환자가 위암인 줄 아는지 묻자 송씨의 딸은 “위궤양인 줄로만 알고 있고, 수술이 끝난 뒤 알려줄 계획”이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송씨 가족이 수술동의서에 서명하고 나가자 B교수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깊은 한숨을 토했다.

B교수는 “환자가 20명을 넘어가면 지쳐서 말할 기운도 없다”며 “영상을 녹화해 틀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재호 기자 futurnali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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