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투표’ 공정성 높여 감동 안길 작품 기대 “문학은 한국 문화의 꽃이었다. 일제 강점기 일간지 문화면은 문학면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당시 문화부 기자들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문인들이었고, 문학은 피폐한 시절 많은 사람들을 위무하는 수단이었다. 식민지에서 벗어난 뒤에도 문인들은 대표적인 지식인의 위상을 오랫동안 유지해왔고, 그들이 생산해낸 작품들은 폭넓게 읽히면서 한국 현대사의 정신사와 맥락을 같이해 왔다.”
2004년, 당시로서는 가장 높고 파격적인 고료인 1억원을 제시하면서 내놓은 ‘세계문학상’ 공모의 변은 이렇게 시작했다. 이어 “문학 지망생들은 영상매체로 진로를 바꾸고 작품을 써도 침체된 문학시장에서 보람을 찾기 힘들다는 자탄이 터져나오는 상황”임을 지적하면서 세계문학상이 “문학 인재들을 다시 문학의 품으로 끌어들이는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문단과 독자들의 깊은 관심 속에서 태동한 ‘세계문학상’이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출범 초기 문단 인사들의 요구를 관철시켰다고 자부하면 만용일까. 우선 심사 시스템을 파격적으로 바꾸었다. 예심 단계에서 심사위원들이 젊은 감각으로 뽑아 올리면 나이 드신 분들이 본심에서 자신들의 취향으로 뽑게 마련인 관행을 근본적으로 방지했다. 이른바 노장청 9명의 심사위원으로 구성하되, 원로작가나 30대 젊은 심사위원들도 본심에서는 무기명 비밀투표를 통해 한 표씩 공정하게 행사하는 구조로 디자인했다. 과반수가 충족되지 않으면 1, 2등을 놓고 재투표해서 과반 표가 나올 때까지 진행했다. 이 시스템의 수혜자가 작금 한국문단의 스타인 정유정이다. 그의 당선작 ‘내 심장을 쏴라’는 2차 투표에서 영광을 안았다.
1회에서 신라의 ‘색공지신’인 미실이 당선작으로 선정된 것이나, 2회 때 발칙한 상상력을 발휘한 ‘아내가 결혼했다’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심사의 차별성이나 문학성과 오락성의 결합 같은 요구는 충족됐으나 사실 문제는 지속성이었다. 아무리 시스템이 완벽해도 매번 대어를 낚아 올릴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세계문학상이 ‘흥행’에 성공하자 유사한 1억원 고료 문학상들이 생겨났고, 응모자들은 한정된 마당에 생산된 작품들은 이 상 저 상으로 떠돌아다녔다. 세계문학상이 상금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동의하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여전히 문제의 핵심은 훌륭한 작품 한 편이다. 최고의 작품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굳이 그까짓 상금이 문제이겠는가. 여건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지난가을과 이번 겨울에 문예지들이 한국 장편소설의 현 단계에 대한 비판적 특집을 실었다. 한마디로 밀도와 총체성이 결여된 영혼 없는 작품들이 가볍게 생산되는 현상, 장편소설 멀미에 대한 아픈 지적들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작가들에게만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는 작품을 쓰라고 강요하는 건 위선이다. 그렇다고 문학이라는 외피를 쓰고 영혼만 팔아서도 독자에게 다가갈 수 없거니와 비난받아 마땅하다.
작가와 그 지망생들은 어찌해야 할까. 단편이 장편보다 더 우월하다는 식의 소모적인 논쟁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한국 단편은 서양과 달리 서사가 꽉 찬 장편과 비슷하다고 한다. 상업성에서 상대적으로 초연할 수는 있지만 문제는 역시 서사요, 그 총체적인 깊이와 감동일 터이다. 1억원짜리 문학상으로는 세계문학상이 매년 기록을 경신하면서 올해 10회째 공모를 하는 중이다. 심사 시스템도 한국 문단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9인이 참여하는 무기명 비밀투표 초기 모델로 돌아갈 예정이다. 26일이 마감이다. 당신의 작품 ‘한 편’만 기다린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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