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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리포트] 김정은, 김정일 용인술 학습 가능할까?

관련이슈 北 권력 투쟁…장성택 전격 사형

입력 : 2013-12-24 10:33:26 수정 : 2013-12-24 10: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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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일이 측근연회에서 전화로 강석주 1부상에게 지시를 하달한 내용에 대해 외무상이 뒤늦게 전달받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김정일은 핵외교와 대미협상 등과 관련한 문제들은 오직 강석주와만 토의·결정했다. 외무성 내에서는 강석주를 핵·대미 외교 담당 외무상이라고 할 정도로 사실상 두 명의 수장이 존재했다. (현성일, ‘북한의 국가 전략과 파워엘리트’)

#2. 1984년쯤 국제비서에 임명된 김용순은 중앙당 청사에 직원부인들을 불러모아 춤판을 벌였다. 그를 견제하는 간부들은 이 사실은 김정일에게 보고했고, 그는 결국 평안남도 덕천탄광에 노동자로 내려가 1년반 동안 ‘혁명화 과정’을 겪고 나서야 국제부 부부장에 복귀했다. (황장엽,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체제의 최대 정치적 후견인으로 ‘2인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사형으로 처형된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의 비참한 최후는 ‘영원한 측근은 없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의 용인술을 상기시킨다. 김정일은 끊임없이 측근들에 대한 경쟁과 견제를 유도했다. 첫번째 사례가 여기에 해당된다. 두 번째 사례는 신임을 얻은 측근이라 할지라도 언제든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측근의 ‘복종’과 ‘충성’을 이끌어낸 경우다.

김일성 주석 시대 대부분의 국가정책은 당 정치국과 같은 공식 정책결정 기구를 통해 이뤄졌다. 이러한 공식석상에는 반드시 관련 부문을 책임지는 장이 참석했다. 현지지도나 외국방문 시에도 관련 부문 간부를 대동했다. 하지만 김정일 시대에는 김일성 시절 틀이 잡힌 북한의 공식서열과 공식정책 결정과정은 무력화됐다. 대신 측근정치, 밀실정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실질적인 정책결정기구 역할을 한 것은 비밀리에 열리곤 했던 ‘측근연회’였다. 김정일은 측근과 비측근 간부 간 견제·경쟁 구도를 조성해 간부들 간 사적 연대와 파벌 형성 가능성을 차단함으로써 간부들 간 끈임없는 충성경쟁을 유도했다. 측근연회 참석 대상에서 제외된 이들은 충성경쟁을 벌여 재신임을 받은뒤에라야 다시 파티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고 황장엽 노동당 비서는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라는 책에서 김정일이 비공식 연회를 자주 연 것은 측근들에게서 솔직한 견해를 들으려던 목적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비밀 연회참석 이후 음주운전하다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한 간부(김치구·리화영·리종목)가 허다했으며 오진우·로명근 등은 사고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고생을 해야했다.

김정일 시절 주요 간부들은 부침을 겪는일이 허다했다. ‘영원한 측근은 없다’는 원칙을 보여주는 사례는 수도없이 많다. 김정일의 신임을 얻어 당 국제비서가 됐다가 탄광 노동자로 좌천된 일이나 김정일 비자금 관리를 맡았던 39호실 최봉만이 공금횡령 혐의로 숙청된 사례, 강석주 외무성 1부상인 강석주가 당 국제부와 마찰을 빚었다가 ‘당의 영도에 도전했다’는 혐의를 적용받아 평안남도 증산군의 중앙당 농장에서 몇달동안 무보수노동 처분을 받은 일이 대표적이다.

일단 측근으로 분류되면 화끈한 대우를 받는다. 측근 간부들만을 위한 최고급 주택단지를 별도로 제공하는가하면 각종 해외 명품과 고가의 자동차, 가전제품, 가구 등 아낌없는 선물공세를 펼쳤다. 측근들의 건강이 악화하면 해외 유명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해주거나 외국의 전문의를 초청하기도 한다. 오진우·리명제·연형묵·허담 등이 이런 혜택을 받았다. 심지어 측근 간부들에게 ‘기술서기’라는 직함을 달아준 젊은 여성들이 배치돼 이들과 함께 ‘동침’을 할 수 있게 해줬다는 얘기까지 있다.(강명도, ‘평양은 망명을 꿈꾼다’) 간부들이 이런 특혜를 받게되면 체제와 ‘공동운명체’ 의식을 갖게된다. 김정일은 측근들에게 ‘수령 결사옹위정신’을 강조하며 체제가 붕괴되면 간부들은 모두 교수대에 오를 각오를 해야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한다.

특유의 카리스마와 오랜 기간 후계자 수업을 받으면서 권력의 속성과 관리 능력을 키웠던 김정일과 달리 경험이 미천한 서른살 김정은이 아버지처럼 능수능란하게 노회한 간부들을 장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김정일 시절 무력화됐던 각종 공식 회의체가 재가동 되는 것은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김정은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카드인 측면도 있어 보인다. 김정은이 장성택 이후 ‘2인자’ 자리를 굳혀가는 최룡해 총정치국장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해야하는 대목이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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