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계초대석] ‘문화융성’ 중심 한예종 김봉렬 총장

관련이슈 세계초대석

입력 : 2014-01-07 20:03:42 수정 : 2014-01-22 20:36:0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는 문화유산 보존 사업을 펼치는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의 사옥이 있다. 밖에서 보면 평범한 사무실 같은데 2층에 올라가니 고즈넉한 전통 한옥이 있어 방문자를 놀라게 만든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1층 공간을 기단 삼아 그 위에 한옥과 마당을 올렸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특별한 한옥의 설계자는 김봉렬(56)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다. 1997년 한예종 미술원 건축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교학처장·기획처장 등을 거쳐 2013년 8월 4년 임기의 총장에 취임했다. 갑오년(甲午年) 새해를 맞아 6일 아름지기 한옥에서 김 총장과 만나 한 해 포부와 ‘문화융성’ 등을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그가 설계한 한옥 앞마당에 서니 시야가 탁 트이면서 경복궁이 한눈에 들어왔다.

―‘문화융성’을 책임지는 국립예술대학 총장이 됐다. 앞으로 한예종을 어떻게 바꿔나갈 계획인가.

“건축학자로서 ‘중창(重創)’이란 표현을 좋아한다. 오래된 건물을 헐거나 고쳐 다시 짓는다는 뜻이다. 완전히 바꾸는 건 아니고 기존 가치를 충분히 유지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려 한다. 1992년 한예종 개교 당시의 초심을 회복하고 싶다. 그동안 예술을 둘러싼 상황이 많이 변했다. 초창기에 목표로 삼았던 국제화의 경우 세계 무대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다. 이제는 단순히 국제콩쿠르 입상을 넘어 우리 예술의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한국예술의 세계 진출을 위한 해외 거점 확보가 앞으로 신경을 써야 할 일이다.”

―그러려면 세계 수준의 예술가를 교수로 확보하는 게 관건일 텐데.

“한예종 교수가 지금 130여명인데 상당히 부족하다. 교수 정원을 적어도 170명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개교 당시 40대였던 교수들이 어느덧 정년이 가까워져 향후 5년 안에 25명 정도를 새로 뽑아야 하는 상황이다. 원칙은 두 가지다. 먼저 세계적인 대가를 영입해야 한다. 외국 국적자나 외국인도 얼마든지 환영한다. 두 번째로 역량이 있고 잠재력도 충만한 신진 세대를 충원해 다양한 교수 진용을 갖춰야 한다.”

―시급한 현안은 아무래도 비좁은 캠퍼스 문제를 해결하는 것 아닌가.

“음악원과 무용원이 있는 서초동 캠퍼스는 조만간 증·개축에 들어간다. 공사를 하는 동안 창경궁 옆의 옛 문화체육관광부 건물을 음악원·무용원 임시 교사로 쓸 계획이다. 미술원 등이 있는 석관동 캠퍼스도 노후화가 심각하다. 더욱이 석관동 캠퍼스는 부지 일부가 조선왕릉 중 의릉(경종의 능) 안에 있다. 조선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따라 언젠가는 비워줘야 할 처지다. 총장 임기 동안 캠퍼스 확충 방향의 틀을 잡으려 한다.”

한예종은 스포츠에 비유하면 태릉선수촌 같은 곳이다. 국제무대에서 외국 예술가들과 어깨를 겨루는 ‘국가대표급’ 예술가 양성이 한예종의 목표다. 그동안 소설가 김애란, 피아니스트 손열음·김선욱,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강주미(독일명 클라라 주미 강) 등 빼어난 인재들이 한예종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 일반 대학생과 달리 자존심과 고집이 센 젊은 예술인들을 가르쳐야 하는 만큼 총장으로서 남다른 교육철학을 갖고 있을 듯하다.

―한예종이 추구하는 인재상은 무엇인가.

“학생들에게 ‘깊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라’와 ‘끊임없이 도전하라’, 두 가지를 늘 주문한다. 도제식으로 전수하는 교육보다는 잠재력을 계발하는 교육이 옳다. 대학마다 어디는 기술에 중점을 두고 어디는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추는데, 한예종은 ‘창의력’과 ‘창조성’이 핵심이다. 그게 우리 학교의 목표이자 사명이다. 창의력은 끊임없는 질문과 도전에서 비롯한다.”

―총장이 되어 바라본 한예종 학생들은 어떤가.

“우리 학생들의 가장 큰 장점이 자발성이다. 다들 예술이 좋아 스스로 공부한다. 캠퍼스 분위기를 보면 몰려다니며 노는 학생이 없어 조용하다. 전부 실기실이나 연습실에 틀어박혀 뭔가 하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 밖에 나가서 먹거나 놀지 않으니 근처에 대학촌이 형성되지 않는다. 식당을 만들어도 영업이 안 된다. 평교수 시절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는데 총장이 되고 나서 보니 낭만도 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교육과 관련해 정부가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분야는 무엇인가.


“문화와 교육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인간이 태어나 재능을 꽃피우는 데 10∼20년은 걸린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지금 인재가 너무 한류와 대중문화 쪽에만 몰려 있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고 순수예술 지원을 줄여선 안 된다. 지금 예술시장이 점차 축소되고 있다. 순수예술 쪽 인재들이 사회에 나가 활동할 공간이 없다. 순수예술 분야의 특별한 수재들을 외국에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예술에 한정해 말하면 뛰어난 천재가 평범한 100명보다 훨씬 낫다. ‘스타’를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다른 대학 총장들은 학교 발전기금 유치에 앞장서는데.


“국립대인 만큼 일단은 더 많은 국가 예산을 따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재 ‘한예종발전재단’이 있어 총장이 당연직 이사장을 맡는다. 그동안 한예종의 발전기금 모금액은 매년 20억원 정도였는데 앞으로 50억원, 많게는 100억원까지 조성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한 재계 네트워크를 총동원할 작정이다. 올해는 한예종 후원회도 출범시키려 한다. 발전기금이 고액이라면 후원회는 그보다 적은 액수를 다수의 후원자로부터 받는 역할을 할 것이다.”

김 총장은 평교수로 있는 동안 한옥 설계에 매진했다. 현대중공업 울산영빈관(2007), 아모레퍼시픽 기업추모관(2009), 영빈관 삼청장(2010)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총장 임기를 마치면 다시 건축과 교수로 돌아가 ‘세계불교건축사’를 쓰는 게 꿈이다. 나라와 상관없이 일정한 양식을 보여주는 기독교나 이슬람 건축과 달리 불교 건축은 한국·중국·일본 등 나라별로 제각각이다. 김 교수는 “불교 건축의 이해는 결국 아시아 건축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간이 나면 주로 무엇을 하나.

“하고 싶은 건 하고, 하지 않을 것은 하지 않는다. 나는 취미가 공부이고 특기가 연구다.(웃음) 늘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 있는 셈이다. 취미는 등산이다. 일부러 청운동 인왕산 밑에 집을 얻어 틈만 나면 인왕산을 오른다. 체질적으로 도시보다 자연에 가깝다. 아무리 훌륭한 건축물도 나무 한 그루가 주는 위안에 못 미친다. 술은 많이 못 마신다. 골프도 못 친다. 내가 골프장 클럽하우스 부속건물 두 군데를 설계했는데, 그쪽 업체 사람들한테 ‘김 교수가 골프를 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웃음)”

―2013년을 뜨겁게 달군 문화재 복원을 둘러싼 논란은 어떻게 보나.

“문화재 분야는 워낙 시장이 좁아 시장이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자유경쟁이 있을 수 없다. 민간에 맡기는 것보다 국가적 노력이 절실하다. 특수한 환자를 돌보는 국립의료원처럼 문화재만 전문적으로 보수하고 복원하는 기구를 문화재청 산하에 둘 필요가 있다.”

―‘문화융성’을 표방한 박근혜정부 1년이 지났다. 앞으로 어떻게 전망하나.

“잘돼야 한다. 일류국가로 가려면 경제만 갖고선 안 된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에 아쉬움이 크다. 그것을 문화적·사상적 아픔으로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봤다. 그 결과 우리 삶의 여건이 더욱 열악해졌다. 한류도 너무 소비적이어선 안 되고 지속가능하고 생산적인, 국가 브랜드를 살리는 한류가 돼야 한다.”

대담=박태해 문화부장, 정리=김태훈, 사진=이제원 기자 af103@segye.com

■김봉렬 한예종 총장은…

 ▲1958년 전남 순천 출생 ▲서울대 건축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공학박사) ▲울산대 건축학과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학처장·기획처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현 한예종 미술원 건축과 교수,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 ▲저서 ‘불교건축’,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 등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권은비 '매력적인 손인사'
  • 권은비 '매력적인 손인사'
  • 강한나 '사랑스러운 미소'
  • 김성령 '오늘도 예쁨'
  • 이유영 '우아한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