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제환 지음/문학동네/1만9800원 |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은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명화다. 이 그림에는 조개껍질을 타고 어디엔가 도착한 비너스와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는 꽃의 여신 플로라가 등장한다. 팔등신의 비너스와 화려한 꽃무늬 옷을 입은 플로라에 대해 후대 미술가들은 균형미가 완벽하고 표현력이 탁월하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성제환 원광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간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에서 이 그림이 탄생한 정치·경제적 배경에 주목한다. 보티첼리를 재정적으로 지원한 메디치 가문의 수장인 로렌초가 그림을 통해 세상에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읽어낸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아니라 상인들이다.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인문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가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르네상스 예술을 분석한 것이다.
고대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다면, 르네상스 시대의 모든 길은 피렌체로 통했다. 당시 전 유럽의 황금은 피렌체로 흘러들었고, 막대한 부를 축적한 메디치 가문 등 피렌체의 상인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했기 때문일까. 저자는 “당시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메디치가의 예술적 취향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TV방송이나 신문과 같은 언론매체가 없던 시절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작품은 정치적인 선전물로 활용되었다. ‘비너스의 탄생’도 마찬가지다. 그림은 비너스가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일으킨 바람에 떠밀려 꽃의 여신 플로라가 환영하는 장소로 이동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서풍이 불면 겨울이 차고 봄이 오기 때문에 화가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황금시대를 잉태한 비너스를 등장시켜 피렌체에도 황금시대가 펼쳐질 것이라는 희망을 그린 것이다. 보티첼리는 비너스가 피렌체로 향하고 있다는 점도 암시하기 위해 ‘꽃의 도시’ 피렌체를 상징하는 꽃의 여신 플로라도 그려넣었다. 이 황금시대의 주인공은 피렌체의 권력을 장악하고 예술가를 후원했던 메디치 가문이었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로렌초 데 메디치였다.
르네상스 시대 대표작으로 꼽히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저자는 이 그림에 피렌체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하려는 메디치 가문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
당시 수도원에 재정적 지원을 한 부유한 상인들은 성당 내부에 미사를 드릴 기도실을 제공받았다. 상인들은 기도실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하고 자신들의 부와 권세를 창조적으로 표현해 줄 예술가들에게 열광했다. 종교화는 수도원의 주요 홍보수단이었으므로, 수도원 역시 자신들의 수도회를 피렌체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줄 재능 있는 화가가 필요했다. 저자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작품은 황금을 가진 상인들의 욕망과 황금이 필요한 성직자들의 현실이 맞닿은 지점에서 탄생한다”고 강조한다.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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