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상인이 시간개념 바꿔놓아 해가 바뀌는 즈음이면 새삼 시간이라는 문제에 생각이 미친다. 오늘날 사람들은 시간이란 획일적이고, 규칙적이며, 정확하게 계량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시계와 달력이 그런 관념을 상식화하지만 시간이 늘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시간에 대한 인식이 오늘날과 사뭇 달랐던 때도 있었다. 서양의 경우 중세가 그랬다.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에서 시간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께 속한 신성한 것이었다. 그래선지 중세문명은 시간에 무감각했다. 중세인은 자신의 나이에 별 관심이 없었고, 나이는 정확히 셈하지 않고 어림했다.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한 산술 연도는 행정을 제외한 일상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달력을 소지한 사람은 주로 마을 신부들이었고, 달력의 날들은 일률적인 숫자가 아니라 성인이나 종교축일의 이름으로 표기되었다.
중세의 시간은 모호했다. 사람들은 ‘잠시’, ‘한참’ 등 막연한 표현으로 시간을 언급했다. 중세의 시간은 부정확할 뿐 아니라 불규칙적이었다. 중세에는 일과 휴식, 노동과 여가의 구분이 불분명했다. 노동은 다른 필요에 따라 곧잘 중단되었고,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집중적이고 강도 높은 노동의 시간과 한가하게 빈둥거리는 시간이 교차했다.
중세 말에 이르면 자연과 농경의 리듬, 종교관행과 결부된 중세의 시간에 변화가 나타났다. 모호하고 불규칙적인 시간이 확실하고 규칙적인 것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14세기의 발명품, 즉 기계장치를 활용한 시계의 등장과 때를 같이 했다. 1300년 이후 유럽 도시 곳곳에는 광장에 시계가 설치되고, 시계의 시각에 맞춰 종각의 종이 울렸다. 기계적 규칙성과 정확성을 속성으로 하는 시계의 시간이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병직 서울대 교수·서양사학 |
중세 상인에게서 유래한 근대의 새로운 시간은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효율성, 생산성과 결부되었고, 노동규율의 핵심이 되었다. 노동은 과제가 아니라 시간 중심으로 바뀌었고, 불규칙적인 노동관습은 규제되었으며, 노동과 여가의 시간이 엄격히 구분되었다. 이 엄격한 노동규율은 시간에 대한 새로운 윤리를 반영한 것이었다. 시간은 돈과 마찬가지로 유용하게 사용하고 절약해야 하며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시간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현대문명으로 확대하면 두 가지 상반된 경향을 확인한다. 한편으로 시간은 곧 돈이며, 돈처럼 아껴야 한다는 근대적 시간윤리는 오늘날 시간이 빛의 속도로까지 세분화되고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더욱더 확고해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슬로 푸드’, ‘슬로 시티’의 구호에서 보듯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려는 움직임도 간과할 수 없다. 빈틈없는 스케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간, 게으름 피우며 맹목적으로 흘려보내는 시간,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는 시간에서 근대적 시간에 지친 심신의 치유책을 찾고 있는 것이다.
안병직 서울대 교수·서양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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