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삼수 넘어 취업장수 급증… 올 상반기 채용시장도 좁은 문
김씨는 “학점, 영어점수 등 ‘스펙’을 더 올릴 것도 없는데 떨어지는 확실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면접에 가면 점점 졸업하고 뭐했는지 묻는 질문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통계 프로그램 관련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채용 공고에서 통계 프로그램 자격증 소지자를 우대한다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마지막 수단’인 셈이다.
장기간에 걸친 불황으로 채용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김씨같이 취업 재수를 넘어 삼수 이상을 하는 ‘취업장수생’들이 늘고 있다. 이들 ‘고스펙 취업준비생’들은 오는 3월 열리는 상반기 채용을 기다리며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고용률은 39.7%로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82년 이후 처음으로 40% 아래로 떨어졌다. 1998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의 40.6%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유례없는 ‘고용 빙하기’에 자연스럽게 취업장수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취업 전선에 뛰어든 지 3년이 넘은 박미영(27·여·가명)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졸업하면 취업이 더 어렵다”는 말을 듣고 미루고 미루다 지난해 8월 졸업한 박씨는 최근 들어 채용 공고가 올라오는 거의 모든 기업에 원서를 내고 있다. 박씨는 “가장 힘든 것은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이라며 “부모님은 계속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라고 하는데 공무원 합격은 쉽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취업장수생들의 설 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308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4.2%가 ‘취업 공백기가 긴 지원자를 꺼린다’고 응답했다.
취업장수생들은 상반기 채용시장만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지만 채용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 상위 500개 기업 중 채용 계획을 확정한 243개 기업의 올해 채용예정 인원은 지난해(3만1372명)보다 적은 3만902명이었다.
정부는 절망에 빠진 취업장수생들에게 사실상 ‘비수’를 꽂는 분석을 내놓았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발표한 ‘2013년 청년 고용동향과 특징’에서 높은 대학 진학률에 따른 취업 눈높이 상승, 대기업·공기업 등 안정적 일자리 선호 심화 등을 낮은 청년고용률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단국대 신은종 교수(경영학)는 “중소기업 일자리 질이 낮은 상황에서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에게 중소기업을 가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불합리 거래 관행을 끊어내 중소기업의 임금과 복지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현태 기자 sht98@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