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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哀史 서린 영월의 겨울풍경

입력 : 2014-02-06 21:54:29 수정 : 2014-02-06 21: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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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어린왕 눈물과 한숨 배어 하얀 풍경 더 시리구나 겨울 영월은 단종의 애잔한 역사가 서려 더 시리고 저린 풍경을 만들어 낸다. 숙부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고 결국 목숨까지 잃은 어린 왕. 우리 역사에 이토록 슬픈 운명을 지닌 인물이 또 어디 있을까. 영월 땅 곳곳에는 단종의 흔적이 배어 있다. 단종을 빼놓고는 영월의 역사와 전설을 얘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단종의 애사(哀史)를 알아야 영월의 풍경도 더 잘 보인다.

조선 6대 임금 단종(1441∼1457)은 12세가 되던 1452년 아버지 문종이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으나, 3년 뒤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으로 물러난다. 1457년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하자 신분이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다.

창덕궁 대조전에서 유배 교서를 받고 돈화문을 출발해 남한강 뱃길을 따라 닷새 만에 영월 들머리에 도착한 단종은 청령포까지 또다시 100리길을 걸어야 했다. ‘편안히 넘어가라’(영월·寧越)는 기원이 지명이 됐을 정도니 영월 땅은 얼마나 거칠고 험했을까.

단종의 눈물과 한숨이 배어 있는 이 길을 다듬고 복원한 게 ‘단종 유배길’이다. 총 길이 43㎞에 달하는 단종 유배길의 주요 명소는 대부분 38번 국도변에 근접해 있다. 그래서 이 길은 직접 걷지 않더라도 자동차로 어렵지 않게 돌아볼 수 있다. 주로 서강을 따라 이어지는 이 길 주변에 한반도지형·선돌·청령포 등 영월의 손꼽히는 비경 대부분도 자리하고 있어, 역사탐방과 관광을 한걸음에 가능케 한다. 단종이 유배를 떠난 건 음력 6월22일, 삼복염천이었다. 그러나 비감한 기분에 젖게 하는 이런 여정은 눈 덮인 산하가 농담으로만 구분되고 삭풍이 몰아치는 한겨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선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눈 덮인 서강과 단종 유배길. 왼쪽 암봉이 선돌의 일부이고, 까마득한 직벽 아래 오른편 강변의 굽은 길을 따라 단종은 청령포로 걸음을 옮겼다.
유배길은 통곡의 길(솔치고개∼주천 10.5㎞), 충절의 길(주천∼배일치 마을 17㎞), 인륜의 길(배일치 마을∼청령포 15.5㎞) 3개 코스다. 단종은 원주와 맞닿은 솔치고개를 지나 영월 주천마을의 우물에서 목을 축인다. 후대에 어음정(御飮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우물을 지나 군등치(君登峙)에 닿는다. 단종이 오르다 하도 힘들어 고개 이름을 물으니, 호송 관리가 “임금이 오르는 고개이니 군등치라고 하죠”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단종의 발걸음은 한반도 지형으로 유명한 선암마을 인근의 방울재로 이어진다. 단종이 타고 가던 말에서 방울이 떨어져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한반도 지형은 2000년대 초에 발견돼 이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 전국의 사행천에 한반도와 유사한 형태의 지형이 여럿이지만, 그중 원조이자 가장 실물에 가깝다고 대접받는 게 영월의 한반도 지형이다.

배일치(拜日峙)는 단종이 서산에 지는 해를 보고 절을 했다는 고개다. 이어 유배길은 서강을 따라 옥녀봉과 선돌을 지나 청령포로 이어진다. 옥녀봉은 수줍은 색시처럼 다소곳해 보이는 바위로, 단종이 어여쁘고 정갈한 정순왕후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 같은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거대한 암봉이 갈라진 선돌.
옥녀봉을 지나 서강변의 좁은 길을 따라 걸으면 또 다른 절경인 선돌로 이어진다. 높이가 70m에 달하는 선돌은 원래 하나였던 암봉이 지각변동으로 둘로 쪼개지며 우뚝 선 모양이 되어 선돌(立石)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선돌 전망대에 오르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옥녀봉으로부터 단종이 걸어온 구불구불한 외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얼어붙은 서강이 하얀 눈으로 덮여 이 일대는 더욱 아스라한 풍경을 빚어낸다.

단종 유배길의 종착점은 청령포. 명승 제50호인 청령포는 삼면이 강이고, 나머지 한 면은 육육봉이라는 절벽이다. 유배지로 이만 한 데가 없었을 것이다. 이 절벽 위에 단종이 한양 쪽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노산대와 아내를 그리며 쌓았다는 망향탑이 있다. 청령포 단종어소 주변에는 700여그루의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 중에는 국내 소나무 중 가장 키가 크다는 관음송(30m)이 서 있다. 단종의 유배생활을 지켜보고(觀), 단종의 절규를 들었다(音)고 해서 관음이라는 이름이 붙은 수령 600여년의 노송이다. 단종어소 바로 앞에 서 있는 소나무도 형상이 특이하다. 가지가 하늘이 아니라 어소를 향해 뻗어, 마치 어린 임금을 배알하듯 허리를 굽힌 모습이다.

청령포에 머물던 단종은 두 달 만에 영월 동헌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긴다. 홍수로 청령포가 잠길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얼마 후 또 다른 숙부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시도가 발각되고 결국 단종에게도 사약이 내려진다. 이때가 유배 온 그해 음력 10월 24일이다.

영월=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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