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상징서 ‘화해의 장’으로
우리 국립묘지 산업화 vs 민주화
대결 위에 존립… ‘통합의 장’ 언제쯤
하상복 지음/모티브북/2만3000원 |
2012년 대선때의 한 장면. 당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각자 선거 운동에 앞서 국립 현충원을 방문했다.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는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이에 반해 경쟁 후보였던 문재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만을 참배했고, 안철수 후보는 세 명 모두를 참배한 뒤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부터 사병 묘역까지 상당히 긴 참배 의례를 시행했다. 이후 언론은 ‘참배 정치’라는 말과 함께 세 후보의 의례를 분석하고 정치적 의미를 덧붙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 자는 그들을 두고 다툰다. 특히 정치가 그러하다. 왜냐하면 정치는 무엇보다 ‘상징’과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죽음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기에 해석되기만을 기다린다. 죽음만큼 강력한 상징도 없다. 그래서 정치는 끊임없이 죽은 자들을 불러낸다.
‘죽은 자의 정치학’은 이런 정치를 물질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국립묘지를 꼽는다. 바로 이곳이 정치적 연출이 쉼 없이 펼쳐지는 무대다. 우리나라 국립묘지와 함께 프랑스의 팡테옹,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가 모두 그런 공간이다. 이 세 공간의 비교는 근대국가의 보편성과 역사적 고유성을 드러내 준다.
팡테옹은 프랑스 대혁명의 산물이다. 말 그대로 ‘혁명의 묘지’였다. 파리에는 이미 구체제의 절대주의를 가시화하는 생드니 성당이 있었다. 팡테옹은 혁명의 사자(死者)를 지속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의미와 정당성을 재생산하며 생드니 성당과 대결했다.
대혁명의 산물로 생겨났지만 대정치가 위고의 죽음을 계기로 국민적 통합의 상징물로 거듭난 프랑스의 팡테옹. 팡테옹은 묘지 크기에 차이가 없고 한 세기에 3, 4명만 안장된다. |
팡테옹과 알링턴 국립묘지는 이처럼 정치적 모순과 분열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두 공간은 끝내 화해와 통합의 공간으로 전환된다. 팡테옹은 대정치가 빅토르 위고의 유해를 받아들임으로써 100여년간 지속된 혁명과 반동의 싸움을 해소하고 국민적 통합의 상징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미국·스페인 전쟁 승리를 계기로 조성된 화해 분위기 속에 매킨리 대통령의 대담한 결정이 더해져 내전 당시 사망한 남부 군인들의 유해를 끌어안아 ‘통합의 표상’으로 탈바꿈했다.
국립서울현충원의 풍경. 책 ‘죽은 자의 정치학’은 한국의 국립묘지가 이념 대립 위에서 서로 화해하지 못한 채 기능적인 공존만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 내 알링턴 하우스의 모습. 미국 매킨리 대통령은 내전 당시 사망한 남부 군인들의 유해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시켜 남북 통합의 계기를 마련했다. 모티브북 제공 |
저자는 국립 현충원과 민주묘지 사이의 통합을 위한 ‘새로운 묘지’ 건립을 제안하지만, 그런 묘지에 어떤 인물이 누울 수 있는지 생각하면 머릿속은 아득해질 수밖에 없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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