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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원전 찬반 떠나 후쿠시마에 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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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3-16 22:03:20 수정 : 2014-03-16 2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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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방사능 공포, 무지에서 비롯돼
복잡한 문제일수록 ‘현장’ 먼저 살펴야
오래전, 집 근처 산책길에서 한두 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개미를 손바닥으로 마구 내리쳐 죽이는 걸 본 적이 있다. 죄책감은 고사하고 즐거운 듯 소리를 지르며 내리치기를 반복했다. 아마 개미가 소중한 생명이거나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근원에 자리한 것은 역시 무지(無知)였을 것이다.

2011년 3월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 이후 원전을 둘러싼 우리네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떠오르는 생각의 하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전 신설을 결정하면서도, 방사능 우려에는 어시장마다 우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수산물을 외면하는 아이러니. 원전에는 안이하면서도 원전이 양산할 수밖에 없는 방사능에 대해선 공포에 떠는 이 기막힌 모순을 보고 있자니 말이다.

2012년 4월 도쿄특파원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체적인 인식이나 견해를 갖추지 못한 채 단편적인 뉴스나 풍문의 영역에 머물렀을 뿐이다. 원전 문제는 늘 ‘남 얘기’였고, 대신 풍문 속 방사능 공포만이 감정을 격정으로 내몰았다. 무지에서 비롯되는 무관심 혹은 과잉 반응.

김용출 도쿄 특파원
무지를 넘어서기 위해선 의식의 확장과 심화가 필요하며, 여기에는 성찰과 경험만큼 좋은 게 없다. 특히 어렵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펄펄 뛰는 ‘현장’은 위력적이다. 이성이 없는 경험은 편견으로 흐르기 십상이지만 경험이 없는 이성 또한 공허하지 않은가. 경험을 통해 이성은 비로소 풍성해지고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올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국회의원 3명이 후쿠시마 지역을 시찰한 것은 조명받아 마땅하다.

정의당의 김제남, 무소속 강동원, 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지난 4일부터 3일간 후쿠시마 지역을 찾았다. 비록 일본의 ‘원전제로 국회의원모임’ 초청 형식이었지만,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 국회의원으로 후쿠시마 지역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들은 후쿠시마의 거주제한구역을 둘러보고 큰 피해를 입은 미나미소마(南相馬)시의 사쿠라이 가쓰노부(櫻井勝延) 시장을 만났다. 주택과 논밭을 제염하는 모습도, 해양오염 실태와 모니터링 현장도 봤다.

김 의원은 “수많은 전등이 켜진 우리 국회와 달리 일본 국회엔 전기도 몇 개 안 켜져 있더라”며 “일본은 원전이 멈춘 후 원전 10개분에 해당하는 전력을 절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동종 제품 중 가장 에너지 효율이 높은 상품이 효율목표의 새 기준이 되는 ‘톱 러너(Top runner)’ 방식의 절전을 구조화하고 재생에너지 공급도 늘려 원전 제로도 실제 가능하다는 걸 느꼈다고 그는 설명했다.

나의 경우, 원전에 대한 생각이 형성된 것은 특파원 부임 이후 매년 2월 이뤄진 후쿠시마 사고 및 탈원전 현장 취재가 컸다. 특히 최근 공동취재단 일원으로 사고 원전 내부를 둘러본 건 잊을 수 없다. 면진중요동에서 양말을 2겹으로 신고 3겹의 장갑을 낀 뒤 보호복에 마스크를 썼을 때의 답답함, 비닐 속에 담아진 오염 물질을 배경으로 공사판같이 펼쳐진 광경, 전면 마스크에 하얀 보호복을 착용하고 피폭의 공포 속에 일하는 도쿄전력 작업원들…. 현장을 둘러보면서 원전은 풍문의 영역에서 실존의 문제로 다가왔다.

소설가 김훈은 2011년 소설 ‘흑산’을 출간하면서 소설에 ‘사랑’이라는 두 글자를 쓰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랑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이들을 이해하기도 어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검증되지 않은 글을 쓸 수 없었다. 확실히 장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체를 온전히 파악하지 않는 글을 쓰지 않겠다는 작가 정신의 표현쯤 될 터이다.

원전 찬반이나 방사능 공포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원전 논쟁에 앞서 현장을 먼저 살펴보고 느끼는 게 필요하다. 원전을 둘러싼 의사 결정 구조 안에 있는 국회의원이나 청와대 및 정부 관계자, 시민단체 활동가는 특히 그렇다. 후쿠시마라는 현장에서 답을 얻는 건 아니겠지만, 최소한 힌트는 얻을 수 있다.

김용출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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