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발언이 진일보한 것이기는 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앞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를 덜어드리고 한·일 관계와 동북아 관계가 공고히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미국 국무부도 “긍정적 진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에서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성급한 보도도 나온다. 오산이다. 한국 정부의 긍정 평가는 아베 내각을 전적으로 신뢰해서가 아니다. 현재의 경색된 한·일 관계의 돌파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싹을 키우기 위해서인 것이다. 정상회담을 열기에는 여건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
아베 내각은 여전히 고노담화 검증 방침을 접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의 고노담화 승계 입장 표명 발언 직후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참의원에서 “고노담화 작성 과정의 실태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검증의 뜻을 거듭 밝혔다. 승계한다면서 검증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이런 이중적 태도가 아베 내각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아베 총리의 입장 변화는 미국의 압력을 못 이긴 측면이 크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내달 한· 일 양국 방문을 앞두고 있다. 아베 총리가 미국에 보이기 위해 일시적인 임기응변책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은 여전하다.
일본이 진정으로 달라지면 한국도 통 큰 외교를 펼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단절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한·일 관계를 조속히 정상화하는 것은 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그러기 위해선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지도자들은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한 진심 어린 행동에 나서야 한다. 결자해지다. 한·일의 꼬인 실타래는 아베 총리가 앞장서 풀어야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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