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탈북 여성 6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내용을 보면 이들의 38.6%가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긴다고 한다. 탈북자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주위의 싸늘한 시선과 냉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상당수는 재중동포보다 못한 3등 국민 취급을 받는다고 푸념한다. 인권 유린의 어두운 터널에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탈북 여성의 3.2%가 직장 성폭력, 7.0%는 성희롱을 경험했지만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신고조차 못했다고 했다.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온 탈북자의 안타까운 현주소다.
국내 탈북자는 작년 말로 2만6125명에 달한다. 고용률은 51.4%에 불과하다. 실업률은 9.7%로 전체 평균보다 세 배 이상 높다. 소득도 형편없다. 취업자 세 명 중 한 명은 월평균 소득이 100만원을 밑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경제적 고통보다 더 무서운 사회적 편견이 이들을 맞이한다. 차별과 왕따는 자녀에게까지 대물림된다. 오죽했으면 탈북보다 남한 정착이 더 힘들다는 소리가 나오겠는가.
탈북자들이 정착하자면 이들의 주거와 고용을 돕는 경제적 지원은 물론 중요하다. 탈북자의 특성, 연령, 정착기간, 취업 유형에 따른 맞춤형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더 절박한 일은 이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따듯한 가슴이다. 남한 정착에 성공한 한 탈북 여성은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어느 목사분께서 고비 때마다 도와주셔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했다. 이런 도움의 손길은 더 늘어나야 한다.
동독 출신으로 독일 총리에 오른 앙겔라 메르켈은 그제 박근혜 대통령에게 “통일이 되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들을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 사회가 귀를 열고 들어야 할 고언이다. 탈북자가 우리 사회에 동화되도록 하는 일은 ‘작은 통일’을 이루는 과정이다. 이들을 따듯하게 품지 못하면서 어떻게 ‘큰 통일’과 ‘통일대박’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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