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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의로운 나치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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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3-30 22:06:25 수정 : 2014-03-30 22: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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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우리를 20명씩 한데 묶었다. 묶고 나면 바로 기관총으로 쏴 갈겼다. 총소리가 계속 귀를 때렸다. 기관총 소리가 멈추고 일본군은 한 사람씩 총검으로 찔렀다. 죽지 않고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총검질이 끝나자 시체들을 불로 태웠다.”

1937년 12월 중국 난징 대학살의 지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중국인의 증언이다. 학살과 강간 파티…. 차마 인두겁을 쓰고는 할 수 없는 잔혹한 짓이 난무했다. 30만명이 넘는 중국인이 일본군의 광기에 스러졌다.

“요즘 심심하던 중 중국인을 죽이는 것으로 무료함을 달랬다. 죄 없는 중국인들을 산 채로 매장하거나 장작불에 밀어 넣고 몽둥이로 때리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 일본군의 일기에는 전쟁으로 작동이 멈춘 인간성이 잘 묘사돼 있다.

난징 점령은 일본군에게 정치·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대학살이 노린 것은 속전속결을 위한 공포감 조성이었다. 일본군의 ‘사람 사냥’은 일본은 물론 인류에게 지울 수 없는 ‘흑역사’로 남았다. 인간의 잔혹성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독일 기업가 욘 라베(1882∼1950)는 25만명이 넘는 중국인을 일본군의 대학살에서 구해냈다. ‘중국판 쉰들러’로 불리는 이유다. 그는 외국 대사관과 난징대학교 주변에 ‘난징 안전지대’를 만들어 중국인을 피신시켰다. 일본의 동맹국이었던 독일 나치 당원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1938년 2월 귀국한 그는 아돌프 히틀러 총통에게 학살을 멈추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게슈타포에 의한 감금과 심문이었다. “적국인데 왜 돕냐”는 핀잔과 함께. 1950년 숨진 그의 비석은 1997년 베를린에서 난징으로 옮겨졌으며, 난징학살기념지 안의 ‘영예로운 곳’에 안장되었다.

유럽을 순방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엊그제 독일 베를린에서 “라베는 전대미문의 참상 현장에서 20여만명의 중국인을 구했다”며 경의를 표했다. 난징대학살 피해자들의 증언은 그날의 참상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베 신조 총리가 선봉에 선 일본 극우세력은 역사의 진실을 축소은폐하기 위해 혈안이다. 양심을 가지고 있다면 엄두를 내지 못할 행태를 서슴지 않는다. 후안무치의 극치다.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말했다. “과거를 잊어버리는 자는 그것을 또다시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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