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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000만원 때문에…" 눈 앞서 날아간 문화재

입력 : 2014-04-10 19:46:41 수정 : 2014-04-11 17: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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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문화재 경매 돈전쟁… 한 해 예산 30억으론 역부족
크리스티 나온 조선 ‘묘법연화경’ 돈공세 中에 넘어가
지난달 20일 미국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장. 불교 경전 ‘묘법연화경 제3권’의 사진이 내걸리고 경매가 시작됐다. “고려 사경(불경을 베껴 쓰는 일)의 전통을 따른 조선 초의 것으로 희귀성, 환수가치가 있는” 유물이었다. 시작가는 12만달러(약 1억2000만원). 서너 명이 응찰했으나 14만달러에서 한국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재단)과 중국의 참가자 간 대결로 좁혀졌다. 가격은 15만달러까지 올랐다. 팽팽하던 균형은 중국 측이 승부수를 던지면서 깨졌다. “18만달러!(약 1억8600만원)” 한번에 3만달러를 올린 예상 밖의 ‘베팅’에 한국은 물러서야 했다. 묘법연화경 입찰을 위해 재단이 준비한 돈이 18만달러였다. 경매사에 지불할 수수료까지 포함된 금액이라 실제 응찰가능금액은 약 16만달러였다. 이틀 전 19세기에 그려진 ‘곽분양행락도(당나라 장수 곽자의의 행복한 노년을 그린 그림) 병풍’을 예상가보다 적은 4만8000달러(약 5000만원)에 구매한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재단이 문화재청을 대신해 참가했던 지난달 크리스티 경매는 외국 경매시장을 통해 해외에 있는 한국 문화재를 환수하는 과정과 현실적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눈 앞에서 ‘타국행’ 구경만… 지난달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나온 ‘묘법연화경 3권’은 고려시대 사경 전통을 이어받아 희귀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응찰에 나섰으나 18만달러에 중국 참가자가 낙찰받아 아쉬움을 낳았다.
크리스티 제공
◆“1000만원만 더 있었다면….”

10일 재단에 따르면 묘법연화경과 곽분양행락도가 나온다는 정보가 입수된 것은 지난 2월이었다. 재단은 3차례의 전문가 회의, 1차례의 현장 확인을 거쳤고 진위, 유출 경로, 활용 가능성 등을 꼼꼼하게 따진 결과 지난달 13일 문화재위원회에서 응찰이 결정됐다. 경매에 참여하는 만큼 가격 산정이 중요했다. 적정가는 묘법연화경이 1억5000만원, 곽분양행락도가 8000만원으로 잡혔다. 적정가의 120%로 응찰한도액을 정하는데 묘법연화경 1억8000만원, 곽분양행락도 9600만원이었다.

낙찰받은 곽분양행락도는 이달 중 국내로 가져온다. 재단은 “화면의 구성, 세부 묘사 등에서 궁중화원이 그린 것으로 보인다. 보존 상태가 좋아 연구나 전시 활용 등에서 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묘법연화경은 응찰한도액 때문에 중국 측에 넘어갔다. 중국은 국제 주요 경매장에서 자국 문화재는 물론 같은 한자 문화권 문화재 확보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큰손’으로 통한다. 재단 강임산 팀장은 “1000만원 정도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 교포가 샀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며 “눈앞에서 놓친 것이라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받은 조선 시대 회화 ‘곽분양행락도 병풍’
크리스티 제공
◆고가 경매에는 명함도 못 내민다

해외 소재 문화재 환수의 주요 통로인 경매 참여의 관건은 결국 돈이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열악하다. 재단이 이번에 활용한 문화재청의 긴급매입비 예산은 30억원가량. 국립중앙박물관을 포함한 13개 국립박물관의 유물 구입비는 20억원가량이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의 문화재 구입에도 쓰는 예산이다. 재단은 민간 기부금 5억원가량을 적립해 두고 있다.

거칠게 말해 이들 주요 기관 3곳의 예산 전부를 합쳐도 국가지정문화재급의 유물은 한 점밖에 살 수 없다. 해외에서 한국 문화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국가지정문화재급 유물의 가격은 30억∼40억원대에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9월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청화백자는 320만달러(약 36억원)에 낙찰됐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지정문화재급은 경매에 나와도 처음부터 참여할 수 없는 구조”라고 밝혔다. 자국 문화재 구입에 열을 올리는 부호들이 존재하는 중국, 민간 기금이 탄탄한 일본과는 대비되는 현실이다.

예산을 일시에 늘리기 어렵고, 개인 기부는 액수에 한계가 있는 만큼 기업의 적극적인 관심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의 관심이 문화재 반환으로 이어진 사례가 얼마 전 있었다. 지난 1월 재단은 미국에서 대형 조선 불화를 확보했다. 18세기 작품으로 도상의 배치가 특이해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불화가 국내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외국계 게임회사인 라이엇게임즈가 3억원을 지원한 덕분이다.
한국박물관협회 김종규 명예회장은 “유출경로가 어쨌든 한번 남의 손에 갔던 문화재를 들여오기가 쉽지 않고, 부득이하게 돈을 써야 할 부분이 있다”며 “국가 예산을 늘리는 것이 어렵다면 기업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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