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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한·일 지자체의 다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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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13 21:59:12 수정 : 2014-04-13 22: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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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자치·분권 철저… 원전 반대 유쾌한 반란
韓, 중앙권력에 휘둘려 지역 부활 먼 일인가
지역(地域)은 그 수가 많은 만큼이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각 지역은 오랜 시간 그들의 기후와 풍토, 인정 등에 기반한 다양한 세상을 만들어 왔다. 생활 속에 밀착한 생명력으로 중앙의 안이와 균열을 전복하기도 한다. 지역이 ‘희망의 근거’인 이유다.

열도가 만개한 벚꽃에 취해 있던 지난 4월 초. 시즈오카(靜岡)현의 가와카쓰 헤이타(川勝平太·65) 지사는 현내 하마오카(浜岡) 원전에서 추진돼온 ‘플루서멀’식 원전계획을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했다. 플루서멀 원전이란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추출한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섞은 ‘혼합 산화물(MOX)’ 연료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의 결단은 원전 사고나 재처리 핵연료의 위험으로부터 주민들을 지키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원전 재가동과 ‘핵연료 사이클’ 정책을 고수해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즉 플루서멀 원전의 건설 및 유지 관리가 불투명해지고 이는 핵연료 사이클 정책 전반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김용출 도쿄특파원
중앙 정부의 원전 정책을 근저에서 허물어버린 가와카쓰 지사. 오사카 출신인 그는 저서 등을 통해 ‘부의 힘을 살려 타인이나 타국에 베푸는 나라가 되자’는 의미의 ‘부국유덕(富國有德)’론을 주창해 반향을 일으킨 비교 경제학자였다.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교세라 회장은 부국유덕론을 일본 국시로 삼자로 했고, 제84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정부 모토로 채택하기도 했다.

특히 당시 시즈오카 지사였던 이시카와 요시노부(石川嘉延)는 부국유덕의 사상에 찬동해 시정 방침으로 ‘부국유덕-시즈오카의 도전’을 내걸었다. 가와카쓰는 이에 이시카와의 브레인으로 활동했고, 2007년 4월에는 이시카와의 요청으로 시즈오카문화예술대학 학장에도 취임했다.

이시카와 지사가 사임하자 가와카쓰는 2009년 6월 후임 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이시카와 정책을 계승하면서도 시즈오카 공항 활성화나 중학교 의료비 무료화 등 자신의 정책을 가미해 2013년 재선에 성공했다.

가와카쓰가 이끄는 시즈오카처럼 일본에선 지역의 반란을 자주 볼 수 있다. 아오모리(靑森)현에 추진 중인 오마(大間) 원전의 건설 중단 소송을 제기한 홋카이도(北海道) 하코다테(函館)시, 지역 정체성을 지키는 교육을 위해 2년째 중앙 정부에 맞서고 있는 인구 6000여명의 오키나와 다케토미(竹富)마을….

단순히 반란만이 아니다. 지역은 다양한 미래사회의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중앙 정부에 비해 규모가 작기에 오히려 실험과 실천의 가능성은 열려 있고, 오랜 역사 속에서 숙성되며 하나의 대안체계를 만든다. 과거 메이지혁명의 주도 세력은 도쿄에서 1000㎞ 이상 떨어진 사쓰마(薩摩)와 조슈(長州)번이었다. 1970, 80년대 각종 복지정책을 선도한 것도 중앙 정부가 아닌 지자체들이었다.

일본에서 지역의 힘은 중앙 정부 및 정당으로부터 독립한 자치와 분권에서 나온다. 중앙 정당에 공천을 허용하고 있음에도 기초의원의 70% 이상과 기초단체장의 99%가 무소속인 것이 이를 증명한다. 광역단체장도 90% 이상이 무소속이다. 중앙 정당은 공천을 못하고 ‘추천’ 또는 ‘지지’로만 관여할 뿐이다.

반면 최근에 기초 무공천이 또다시 좌절하는 등 우리네 지방자치는 여전히 척박하다. 지역의 결핍은 각 분야에서 역효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16세기 일본으로 끌려가 조선의 예술혼을 바탕으로 도자기를 발전시켜온 심당길(沈當吉)의 15대 후손 심수관이 “한국은 도자기를 비롯해 예술의 경향과 특징이 시대에 의해 구획지어지는 반면, 일본은 시대가 아닌 지역에 따라 구획지어져온 것 같다”고 지적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중앙집권 사회인 우리에게 수많은 다양성을 담지한 지역의 부활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인가? 도쿄에서는 무수히 떨어진 벚꽃 옆에서 새 생명이 푸르게 움트고 있는데.

김용출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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