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고 희생자 가족이 겪는 고통을 경험한 황명애(57·여·사진)씨의 간절한 바람이다. 황씨는 2003년 2월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192명 사망)로 ‘분신’이나 다름없던 큰딸(당시 19세)을 잃었다.
화마가 삼킨 딸은 한동안 신원확인이 안 돼 ‘실종자 47번’으로 불리기도 했다.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이기도 한 황씨는 “그날 이후 가족 전체가 상상을 초월한 고통 속에 오랫동안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그는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피해자 가족들을 돌보고 회복을 도와주는 시스템이 여전히 부실하다고 꼬집었다.
“나만 해도 심한 우울증으로 2년가량 집에만 있다가 너무 힘들어 심리치료 병원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의사가 책 4권의 제목을 일러주며 ‘한번 읽어보라’는 식이어서 그냥 나왔습니다.”
황씨의 작은딸 역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다 절에 가서 ‘단기 출가치료’를 받았다.
“가족 중 한 명이 아플 때 나머지 가족이 보살펴주면 되지만, 사고 유가족들은 모두가 아픈 상태라 주변의 세심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사실상 방치하고 있어요.”
이로 인해 대구지하철 희생자 유가족 중에도 가족 전체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황씨가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며 특히 걱정이 되는 것도 이 부분이다. 그는 사망·실종자 가족과 생존자 등에 대한 심리치료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지원시스템은 물론 전문기관조차 없다고 단언했다. 본인 등 많은 유가족이 형식적인 위로와 치료 등에 질려버린 탓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실제 많은 경험을 토대로 우리를 치료한다는 느낌보다 우리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래서 ‘진짜’ 전문가로 꾸려진 팀을 통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아픔을 치유하고 삶의 의지를 회복하도록 지속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황씨는 강조했다. 특히 “대구지하철 피해자 가족 간 서로 많은 대화를 하면서 슬픔을 털어내는 게 치유에 많은 도움이 됐다. ‘잊으라’는 말보다 피해자 가족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게 진정한 치료”라고 말했다.
황씨는 “언제까지 국민은 나라를 짝사랑만 해야 하냐”며 “일이 터질 때마다 똑같은 대책으로 피해자 가족과 국민들에게 ‘희망 고문’만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정부에 일침을 가했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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