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부패법’ 공무원 선물 3만원 이상 신고
#2. 독일 다국적 전기·전자 기업인 지멘스는 2008년 해외 대규모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2억유로(약 2853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게 들통났다. 전·현직 지멘스 간부 7명이 공금 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전직 경영진이 퇴진했다. 2억유로가 넘는 벌금을 낸 데 이어 부패와 연루된 직원 500여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독일은 유럽뿐 아니라 세계에서 대표적인 반부패 국가로 꼽힌다.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청렴도지수는 78로 177개국 가운데 12위다. 한국은 55로 46위에 그쳤다. 유럽집행위원회(EC)도 지난 2월 사상 첫 유럽 반부패 보고서를 내놨는데 ‘자신의 일상이 부패에 영향을 받고 있는가’란 질문에 독일인의 응답률은 6%에 불과했다. 같은 질문에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 평균은 26%였다.
독일이 대표적 청렴국가가 된 데는 1997년 제정된 ‘반부패법’의 영향이 지대했다. 반부패법은 검찰이 대가성을 입증해야만 처벌이 가능했던 예전과 달리 금품이나 향응을 받는 것만으로도 형사처벌(이익수수죄)이 가능하도록 했다. 연방·주 정부, 공공기관 공직자는 물론 공공기관과 협회, 재단, 민간기업 관계자도 모두 적용 대상이다. 공무원들은 3만원 이상의 선물을 받을 경우 반드시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특히 고위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했다. 불프 전 대통령은 검찰이 2만유로의 벌금형에 처하는 약식기소에 합의할 것을 제안했으나 자유로운 신분에서 무죄를 입증하겠다며 대통령직을 내놨다. 2002년 베를린 시정부 경제장관을 지낸 그레고 기지도 마찬가지였다. 공무수행 중 쌓인 항공사 마일리지를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이 일자 즉각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장관직을 내놨다.
독일은 부패사범 척결을 위해 강력한 처벌에만 머물지 않았다. 원소연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지난해 11월 한독사회과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독일과 한국의 행정문화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연방정부는 2004년 ‘부패방지를 위한 지침’을 제정해 모든 행정업무가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진행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했다.
여기에는 매년 건설공사나 회계업무 등 부패가 빈발하는 특정 업무분야를 선정해 집중 관리감독하고 5년 이상 특정업무를 맡을 수 없도록 자동으로 순환근무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부패를 유발할 수 있는 공공수주 결정이나 사업 허가, 정부 지원금 결정과 같은 민감한 업무는 반드시 2인 이상이 맡도록 하고 그 결정과정을 연방정부 기록소에 남기도록 했다. 내부비리나 부패의 경우 고발한 자를 철저히 보호하고 신분상 위험을 제도적으로 방지한 점도 독일의 대표적인 반부패 정책으로 꼽힌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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