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F-X사업 협상 의식, 美 “고장 16발 수리” 입장 바꿔
공군 관계자는 18일 “지난해 3월과 4월 세계일보 보도 이후인 4월29∼30일 대전 계룡대 공군본부에서 한국 공군과 미 해군, 슬램이알 제작사인 보잉사 관계자들이 모여 긴급회의를 가졌고 그해 8월까지 한국에 판매한 42발의 슬램이알 가운데 고장난 16발의 엔진을 모두 수리하기로 합의를 봤다”면서 “이후 수리는 미 해군을 거쳐 보잉사가 맡고, 한국은 수송비를 떠맡는 것으로 정리됐다”고 말했다. 그는 미측이 태도를 바꾼 배경으로 “한국 공군의 차기전투기(F-X)사업 협상이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면 된다”면서 “여기에 언론 보도까지 이어지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보잉사는 F-15SE 전투기로 F-X 사업에 뛰어든 상태였다.
국방부가 지난해 4월 육군의 대형공격헬기사업(AH-X) 기종으로 미 보잉사의 AH-64E ‘아파치 가디언’을 선정한 것도 미측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낸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본지는 지난해 3월14일자 보도를 통해 슬램이알의 엔진 고장 소식을 처음으로 알렸다.
최대사거리 278㎞, 오차범위 3m 미만인 슬램이알은 휴전선 이남에서 평양의 북한군 지휘부 창문을 맞출지, 출입문을 겨냥할지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정확도가 높다고 홍보된 무기였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시 선제타격을 한다는 ‘킬 체인(Kill Chain)’의 핵심 전력이기도 했다. 그런데 도입 물량(42발)의 절반가량이 엔진 결함으로 사용이 중단돼 킬 체인 체계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우리 공군은 3차 핵실험(2월)이 진행된 뒤 북한이 ‘무수단’으로 추정되는 중거리 미사일을 동해안으로 이동시키면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 위기가 고조되자 미국 측에 고장난 슬램이알의 대체물량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측은 슬램이알이 배상 요구 등에 제한이 있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판매됐다는 이유를 들어 대체물량 공급에 난색을 표했다. 미 해군 유도무기사업단장은 당시 한국 공군에 보낸 서신을 통해 “미사일 엔진 쪽 이상으로 한국 공군이 운용을 중단한 슬램이알의 대체 물량을 요구했지만 현재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 미 해군이 보유한 여유분이 없다”고 밝혔다. 본지는 미측의 이 같은 불합리한 태도를 비판하는 추가 보도를 통해 한·미 정부를 압박했다. 업계 관계자는 “고장난 슬램이알을 수리하게됨으로써 4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절약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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